대법원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15일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채무탕감 청탁과 함께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특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 및 추징금 1억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취지로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또 변 전 국장과 함께 기소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전 산은캐피탈 대표,이정훈 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부장,김유성 전 대한생명 감사에 대한 원심선고도 파기환송했지만 금품수수를 자백한 연원형 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대해서는 징역 3년6월과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받아들였다.



◆뇌물제공자 진술 놓고 1,2,3심 오락가락

김동훈 전 안진회계법인 대표가 현대차그룹 계열사 채무탕감을 위해 총 20억2000만원의 뇌물을 줬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이번 사건의 명운을 갈랐다. 1심은 김씨가 세 차례에 걸쳐 2억원을 변 전 국장에게 제공한 혐의에 대해 "(뇌물수수 현장으로 지목된) 과천 정부청사 출입기록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며 변씨와 만났다는 일식집과 술집을 특정하지 못했다"며 변 전 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14억원 부분은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나머지 6억2000만원 관련 진술은 믿을 수 있다며 징역 5년형과 추징금 1억5000만원을 선고하면서 변 전 국장을 법정구속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뇌물액 총 20억2000만원 중 무려 14억원에 대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상황에서 나머지 6억2000만원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도 함부로 인정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김씨는 (뇌물제공)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현대자동차그룹 측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로비자금 명목으로 편취한 행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궁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며 역시 김씨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부실수사,별건수사 논란

수사과정에서 증거조작을 시도했다며 대검 중수부와 재경부 금융정책국 간 힘겨루기로 비화되기도 한 이 사건은 전형적인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오명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2006년 초 '김재록게이트'가 최초 발단이 됐지만 김씨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착수 배경에 의문을 남겼다. 특히 검찰은 변 전 국장을 현대차그룹 뇌물수수 사건으로 구속해 놓고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에 대해 140여일간 수사,별건사건으로 구속해 본건사건을 수사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대로 된 증거 없이 피고인의 자백 하나만 믿고 '칼'을 휘두르는 구태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정돼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변씨의 고교동창이자 변호인인 노영보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뇌물을 줬다는 진술만 있으면 된다는 검찰의 안이한 자세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인 엘리트 관료 출신들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반복되는 점도 문제다. 재경부의 대표적인 금융통이었던 변 전 국장은 "외국계 자본에 대항할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하고 싶다"면서 2005년 1월 돌연 사퇴한 뒤 그해 4월 보고펀드를 설립했지만 다음 해인 2006년 6월 검찰에 체포됨으로써 곡절을 겪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