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이다. 국내 투자전문 사이트에 스타 논객 한 명이 등장했다. 주식은 물론 채권 선물 옵션 외환 원유 등 다양한 분야의 투자를 섭렵하고 있던 전업투자자 K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글은 아주 독특했다. 예의나 공손함 격식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육두문자가 난무하는데다 안하무인과 시니컬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럼에도 K씨는 자신만의 예리한 시각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을 해석,이를 토대로 그럴 듯한 시황분석도 하고 나름대로 투자방식과 투자철학도 설파했다.

그의 예상이 늘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글 솜씨는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지독한 독설과 공격성으로 무장한 그는 제도권내 소위 '고수'로 불리는 사람들을 엉터리로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당연히 욕도 많이 먹었지만 해박한 경제지식과 명쾌한 분석력, 촌철살인의 글 솜씨로 열성팬도 많았다. 좌충우돌하는 그의 글을 통해 묘한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얻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한창 회자되는 온라인 경제논객 미네르바의 글을 보면 문득 K씨가 생각난다. 다소 격한 언어의 구사, 누군가에 대한 적개심, 비관 일색인 전망,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그리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제해석 등등에서 두 사람은 많이 닮아 있다.

사실 미네르바의 글에서 이런 특징을 빼고 나면 그의 글은 지극히 평범하다. 금융권에서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최근 경제뉴스와 통계 등을 인용해 써 내려갈 수 있는 경제 수필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예리함도 보이지만 오류 역시 다수 발견된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토록 미네르바에 열광하는 것일까. 세상살이가 빡빡해지면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감정의 분출구를 찾아나서게 마련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지고 펀드에서 돈 잃고 대출이자는 늘고 화풀이할 곳은 없고. 그런 분노와 상실감으로 속이 숯검정이 된 대중들에게 미네르바가 지혜의 여신처럼 다가와 그들을 후련하게 대변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경제난에 정부에 대한 신뢰 붕괴까지 겹친 이 난국을 한방에 해결해 줄 진정한 지혜의 여신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