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노사가 임금협상을 타결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노조 산하의 주택금융공사 노조가 금융공기업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내년 임금을 동결하기로 26일 사측과 합의했다. 다른 금융공기업은 물론 시중은행으로도 확산될지 주목된다.

주택금융공사 노사는 최근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결의하고 임주재 사장과 윤정한 노조위원장 등 전 임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신노사문화 선포식'을 가졌다.

주택금융공사 노조는 이에 따라 내년도 임금을 동결하고 쟁의행위를 자제하는 등 공사의 경영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사측은 직원의 고용 안정과 삶의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공사 관계자는 "올해 2000억원의 증자를 위해 정부 예산의 지원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도 현 상황에서 임금 동결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37개 산하 지부의 입장이 다른 만큼 중앙교섭에서 임금 동결을 공식 선언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산별노조의 대표성이 걸린 문제"라며 "산별노조에서 동결에 합의하면 지부별 임금 협상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취임 첫날인 지난 25일 사무실을 방문한 신동규 신임 은행연합회장에게 올해 임단협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식 제의했다.

금융노조는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임금협상을 '미합의'상태로 남겨두고 은행별 협상으로 넘기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각 은행 노조는 "지부별 협상으로 넘어올 경우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노조위원장은 "현 상황에선 지부로 내려온다 해도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금융노조가 신임 연합회장과 큰 틀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고 말했다.

연합회도 "중앙교섭을 통해 큰 틀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칫 지부로 협상을 넘길 경우 중앙교섭의 무용론까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연말을 앞두고 개별 은행 노사 간 협상으로 이어질 경우 은행 간 눈치보기 등으로 혼선이 벌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상황이 유리할 경우 임금교섭을 하고 불리할 경우 미합의 상태로 남기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금융노조가 임금협상에 합의하지 못한 채 지부로 위임한 사례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 차례 뿐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 주변에서는 노조 측의 임금동결과 사측의 고용보장을 맞바꾸는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금융노조와 연합회는 내달 4일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심기/이태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