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감청을 양성화하는 법안이 최근 발의됨에 따라 입법 과정에서 찬반 공방이 전개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이 지난 달 30일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안은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자들이 감청에 필요한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해 국정원과 검.경 등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업체의 도움을 받아 합법적으로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휴대전화 감청 양성화 추진 논리는 = 휴대전화 감청이 현행 통비법상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국정원이 `카스' 등 첨단장비를 구비, 영장없이 휴대전화 감청을 해왔던 사실이 2005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 관련 장비를 폐기처분한 이래 국정원과 다른 수사기관들은 관련 장비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 말대로라면 현재 휴대전화 감청은 합법이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형적' 상황인 것이다.

국정원 및 수사 당국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전화 등 첨단 통신망을 악용하는 신종 산업스파이나 강력범들의 지능적 수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 양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휴대전화가 보편화한 상황에서 유선전화.팩스.이메일만 감청할 수 있는 현재 상태로는 범죄의 진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만큼 수사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 휴대전화 감청을 양성화해야한다는 논리다.

◇어떤 식으로 감청하나 = 발의된 통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정원과 수사기관들은 통신업체의 협조를 통해서만 감청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통신업체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국가기관이 자의적이고 불법적으로 감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또 통신업체는 투명성이 공인된 선진국형 감청 협조설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한 채 영장에 근거한 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법원이 허가한 기간 내에 대상자의 통화 내용을 분리한 뒤 암호화해서 기관에 전달하게 된다.

일각에서 통신업체가 상시적으로 사용자의 통화를 녹음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통신업체는 감청 협조에 필요한 시설만을 구비, 가입자의 통화내용을 녹음 또는 보관하지는 못하도록 한다는게 관련 당국의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미국.영국.호주 등이 통신업체에 감청 협조설비 구비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독일.네덜란드의 경우 `감청협조 설비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법에 명문화시켜 놓았다"고 소개했다.

◇논란 소지는 = 휴대전화 감청을 양성화하는 자체에 대해 국민 일반의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가 입법 과정에서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정원 도청 사건을 통해 2000년대 이후로도 정보기관이 불법 휴대전화 감청을 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생긴 국민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극복될지가 관심사인 셈이다.

앞서 17대 국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시민사회의 반발 속에 무산됐던 배경에도 `국가기관의 탈법'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 만큼 휴대전화 감청 양성화시 범죄 대응을 위한 필요성과 남용에 따른 국민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 중 국민 여론이 어느 쪽으로 쏠리는 지가 입법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통신 사업자들의 동조 여부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률안은 `장비 등의 구비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가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장비 구입 비용을 국가가 맡을 수 있는 여지를 열어뒀다.

하지만 민간 기업들이 예민한 국가 업무에 결부되는데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또한 직접 감청을 하지는 않고 연결 업무만 맡는다 하더라도 민간 기업들이 감청과정에 개입함으로써 대상자의 신원을 알게 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논란이 일 수 있을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민간 기업의 묵인 또는 방조 하에 영장없는 감청이 이뤄질 가능성을 차단할 대책이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