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 미끄럼 방지, 조향 안정성 높여줘, 국내 운전자들 몰라

안전 운행을 위한 핵심부품인 ESC(차량자세 제어장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ESC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잠김방지장치(ABS)와 구동력제어장치(TCS) 등을 모두 포함하는 첨단 제동장치로,'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로 불린다. 위급상황 때 엔진 출력을 조절해줄 뿐만 아니라 각 바퀴를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탁월한 안전성이 이미 검증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신차에 대한 ESC 장착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유독 국내에선 외면받고 있다.

◆사고원인 25%는 미끄러짐
독일 보험회사협회(GDV)에 따르면,운전자가 상해를 입는 전체 사고 중 25%는 차량의 미끄러짐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자가 치명적인 상해를 입은 전체 사고 중 60%는 측면 충돌사고였고,과속과 운전미숙,과도한 핸들 꺾음에 따른 미끄러짐 등이 원인이었다. 협회는 "차량의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조향 안정성을 높여주는 ESC를 많이 장착하면 심각한 상해를 동반하는 사고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실시한 실험에서도 ESC를 기본 사양으로 장착하면,교통사고 발생률이 50%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ESC가 운전미숙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30%,치명적인 사고로 연결되는 전복사고를 12% 각각 줄여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ESC 작동원리는
ESC는 각종 센서를 통해 수신되는 신호를 중앙처리장치가 파악해 운전자가 의도한 진행 방향과 실제 자동차의 진행 방향을 비교하는 구조다. 운전자가 꺾은 핸들 각도보다 더 적게 회전하는 '언더스티어링'이나 더 크게 회전하는 '오버스티어링' 현상이 나타나면 ESC가 엔진 출력을 줄여 차체를 안정시킨다. 엔진제어만으로 주행 안전성이 조정되지 않으면 즉시 네 바퀴를 각각 다른 크기의 힘으로 제동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 의도대로 자동차가 안전하게 진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SC가 위력을 발휘할 때는 여름 장마 때 빗길이나 겨울철 살얼음이 낀 출퇴근 길에서다. 차가 미끄러져 쉽게 제동이 되지 않을 때 ESC는 바퀴를 감고 푸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제동력을 높이는 ABS와 너무 빨리 코너를 돌 때 엔진출력을 줄여주는 TCS 기능을 한꺼번에 발휘한다.

◆국내에선 애물단지 취급
ESC는 국내에서 ESP나 VDC(능동형 자세제어장치)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대형차 외에는 대부분 선택사양(옵션)으로 돼 있는데,인기가 별로 없다.

베스트셀링 모델 쏘나타의 판매대수 중 ESP 기능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2% 정도다. 지난 6월엔 총 1만910대의 신차 중 198명(1.8%),7월엔 9650대 중 184명(1.9%)만이 ESP가 포함된 옵션 패키지를 구입했다. GM대우 토스카와 르노삼성 SM5 구입고객 중 같은 옵션을 선택한 사람도 각각 3.9%,5.6%(7월 기준)에 그쳤다.

고급차량인 쌍용자동차 체어맨H(500S급) 고객 중 ESP 옵션을 선택한 사람은 전체의 14.9%(7월 기준)에 불과했다. 연중 최고치로 기록됐던 5월(26.7%)보다 11.8%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국내에서 ESC 인기가 낮은 것은 소비자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ESC의 검증된 효과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는 얘기다. 100여만원에 달하는 옵션비용과 보험사들이 ABS나 에어백 등과 달리 보험료 할인혜택을 주지 않는 점도 ESC 선택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계자동차연맹에 따르면 국내 신차에 대한 ESC 장착률은 작년 기준 18%로,미국(47%) 유럽(46%)은 물론 '경차 천국' 일본(27%)보다도 훨씬 낮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선 중형 이상 차량에 ESC를 장착하지 않으면 신차 판매회사가 집단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며 "ESC와 같은 핵심 안전사양의 중요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