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구조조정 기업을 매각할 때 외국 자본을 유치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외자를 끌어들여 외환시장의 '달러 가뭄'을 해소하겠다는 것.해당 기업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최근 인수전이 뜨겁게 달아오른 대우조선해양은 첫 머리에 언급됐다.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한화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은 전 위원장의 발언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액면 그대로 보기엔 큰 문제 없어 보였다. 금융 전반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할 만한 얘기를 한 듯했다. 외환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발언을 너무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내부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불안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인수전인 만큼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파괴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의 방침은 외국자본 유치를 제한하는 쪽이었다. 인수기업들도 되도록 자기 돈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만 외국 자본에 손을 벌리는 게 허용된다고 받아들였다. 기획재정부와 산업은행 등으로부터는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할 때 외국자본의 참여를 제한하겠다"는 얘기가 잇달아 흘러나왔다. 외국인의 지분 참여 한도도 최대 10%로 묶이는 분위기였다. 외국자본이 주로 애용하는 '풋백옵션'에 제동을 걸겠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업들이 풋백옵션을 통해 과도하게 M&A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랬던 정부가 갑자기 외자 유치에 가산점을 줄 듯한 태도로 돌변하자 인수 후보기업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우려도 컸다. 금융계 관계자는 "전 위원장의 발언은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외자유치 계획을 갖고 있는 특정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확한 배경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위태로운 요즘,정부까지 나서서 불확실성 하나를 더 보태고 있다.

안재석 산업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