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서로 감시하도록 하고 커닝을 하는 학생은 영점처리는 물론 정학을 시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경쟁상대인 A가 커닝했다고 선생님에게 일렀다. 아이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선생님은 A를 규칙대로 정학처분시켰다. 그러나 A는 커닝을 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A의 정학처분을 취소했다. 그러나 A의 점수는 여전히 영점으로 놔두었다. A가 채점해서 점수를 달라고 하자 선생님은 '실무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다시 채점하기가 번거롭고 이미 매겨진 등수가 바뀔 경우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은 상급학교 진학 장학금 수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이다. 선생님은 무섭다. 잘못 보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일 처리는 너무나 부당하다.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같은 세상에 실제로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우선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일들이 다른 분야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공기업 경영평가,정부발주 사업자 선정을 위한 평가,대학 연구지원을 위한 각종 평가 등이 예다. 이런 데서 선생님은 정부기관이고 학생은 공기업,민간사업자,혹은 대학들이다. 힘센 정부기관이 잘못된 평가를 밀어붙일 때 피 평가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말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우수한 자를 뽑는다고 하지만 실제는 가장 잘 보이는 자만 뽑는 자의성을 볼 때 평가에 대한 신뢰,나아가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경쟁이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틀이 적합해야 하고 또한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 경쟁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시장경쟁은 다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소비자에게 다양한 부가가치를 제공해 성패를 가른다. 반면에 정부사업처럼 수요자가 하나인 경우 다수의 공급자를 평가해 그 중 가장 우수한 자에게 일을 맡긴다. 예술이나 연구의 경우엔 이렇게 하지 않고 각각을 따로 본다.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쟁의 틀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대학에 대한 연구지원도 전국체육대회처럼 한다. 이공계와 인문계처럼 성격이 다른 전공들도 같은 잣대로 평가하려 하며 대학들을 100 m 경주시키듯 한다. 대학들은 상금이 너무 크므로 어떻게든 이기려고 온갖 편법을 다 쓴다. 대학 나름의 특성은 사라지고 100 m 선수만 남는다. 선진국에서는 몇몇 학술재단에 돈을 넣어두고 대학들이 자기네 특성에 맞추어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면 그에 맞는 기준을 세워 심사를 하고 지원금액도 다양하게 결정한다. 이것이 올바른 경쟁의 틀이다. 우리가 이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될 경우 혹시 주관부처의 파워가 약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은 아닌가.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100 m 경주를 할 수밖에 없다면 절차라도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앞의 예에서 서로 고자질하도록 한 것은 경쟁상대들이 암묵적으로 담합해 우수한 자를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또 정학처분을 내리고 나서 A의 소명을 듣는 것은 판결 이후에 피고의 변론을 듣는 것과 같다. 양쪽 이야기를 먼저 들은 후 결정을 내렸다면 판결을 번복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정학을 취소한 후 채점 절차를 두지 않은 것은 어떤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다.

정부는 사업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피 평가자의 도덕적 해이를 탐지하는 데 열심이지만 역으로 평가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체크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같다. 감사원이나 국회 등 감사기능이 있는 기관에서는 이 부분을 꼼꼼히 점검하여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