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수길은 '향수'에서 맥주의 맛을 보리와 결부시켜 노래했다. "맥주의 맥(麥)자에서 오는 신호는 실물인 보리를 연상케 한다. 봄날 들에는 아직 푸른 빛이 옅을 때,삼단 같은 머리를 빗은 듯한 파란 보리밭은 싱싱하고 눈을 즐겁게 한다. 그 봄날의 보리에 대한 인상이 맥주와 관련이 맺어지는 것이었다. "

사실 '비어(beer)'라는 맥주의 어원은 곡물과 맥이 닿아 있다. 라틴어의 '마시다(bibere)'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나,게르만족의 언어 중 곡물을 뜻하는 '베오레(bior)'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주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한참 올라가지만,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구한말이었다. 개항 이후,일본인 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일본 맥주 '삿포로'가 선보인 것이다. 1910년 합방을 계기로 일본 맥주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내면서 맥주 소비량은 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맥주는 값이 비싸 일반 대중이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웠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전통주인 탁주의 비중이 전체 주류의 50% 이상을 차지했고,맥주는 겨우 6% 선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맥주가 이제는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술이 됐다고 한다. 국세청이 어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1966년 연간 맥주 출고량이 4만3598㎘에 불과했으나,41년 뒤인 지난해는 198만2697㎘로 무려 45.5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마치 맥주의 질주를 보는 것 같다. 반면 탁주 소비는 3분의 1 이하로 뚝 떨어졌다.

맥주의 대중화는 갈수록 가속화되는 추세다. 독특한 맛과 향의 맥주를 만드는 홈브루(home-brew)가 유행인데다,음주패턴이 질적으로 변해가고 있어서다. 일본에서는 '차별없는 건배'를 한답시고 알코올이 없는 어린이용 맥주까지도 등장할 정도다.

맥주를 두고는 온갖 찬사가 쏟아진다. 그 거품 속에서 낭만을 즐기고,고독을 달래고,상쾌함을 맛본다고 법석을 떤다. 화려하게 부상한 맥주를 보며 국산 술의 존재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