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리노 시는 10년 전만 해도 재소자들로 넘쳐났던 교도소를 외부 리모델링 없이 내부만 바꿔 현재 미술품 전시관 '플렉시빌리티(Flexibility)'로 사용한다. 도시 한 편에선 100년이 넘은 기차 수리 공장을 '토리노 역사전시관'으로 활용 중이다. 건물 외부에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있고 녹슨 철골 구조가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대문형무소를 미술품 전시관으로,구로 지하철 기지를 역사 전시장으로 바꿔 쓰고 있는 셈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슈투트가르트시 에슬링엔에 있는 '다스 딕(Das Dick)'을 찾는 이용객은 연간 250만명이 넘는다. 18세기에는 철물 공장이었지만 개조를 거쳐 극장 및 피트니스 센터 등을 갖춘 복합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베를린 지역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을 맞고 반파된 18세기 건축물 '카이저빌헬름 성당' 내부를 개조한 전시관이 있다. 이 두 곳 역시 겉만 봐서는 내부에 문화 공간이나 전시관이 있을 것으로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폐쇄된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바꾼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널리 알려진 사례다.

토리노 시의 도시디자인 관계자는 "역사를 증언하는 건축물은 쉽게 부수지 않는다"며 "외형을 보존하면서 새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를 개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의 도시디자인 관계자도 "독일에서 80년 이상 된 건축물은 함부로 허물 수 없게 문화재 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18일부터 동대문 야구장과 축구장 철거를 시작해 현재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첨단 디자인 센터를 조성,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에서다. 동대문운동장은 지난해까지 82년 동안 국내 스포츠 역사를 증언하는 건축물이었다. 외형은 놓아 두고 내부만 개조하기로 했다면 역사의 현장과 관광 명소로서의 역할을 겸비하는 진정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지 않았을까. 다스 딕의 건축가인 하인츠 스프링만의 "새 건물도 의미가 있지만 전통과 역사를 보존한다는 점에서 개축은 길게 보면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베를린(독일)=임기훈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