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

2008년 5월2일,우리는 새로운 정치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이날 저녁 중ㆍ고등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된 촛불 시위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怪談)으로 빚어진 해프닝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만은 없는 중대한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소년 소녀들은 촛불 집회를 통해서 좌와 우의 기성정치인들이 이제까지 경시해온 이슈를 종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를 지향했다.

촛불집회는 기존의 좌파 정치가 한계에 부딪쳤음을 알렸다.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폭력을 배제했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와는 다른 이슈를 들고 나왔다. 참가자들은 노조와 같은 이익단체의 집회 참가자들과는 달리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주한 미군철수와 같은 좌파 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던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요구했던 이들의 주장의 핵심에는 건강한 삶의 추구라는 '삶의 질'의 문제가 놓여 있었다.

아울러 우파 정치인들의 깊은 반성을 요구했다. 10년 만에 집권을 한 보수진영의 국정운영은 서투르기만 했다. "섬김의 정치를 하겠다"는 구호로 10년 만에 대권을 창출하기는 했지만 구호를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쇠고기가 수입되면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며 공포에 떠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먹거리를 다루는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이 너무나 폐쇄적이었다.

그렇게 집회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인들이 새로운 정치에 눈을 뜨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야당 의원들은 현 시국이 독재정권 시대의 '공안정국'과 같다고 억지를 부린다. 먹거리의 위생과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은 뒷전에 미룬 채 지지율을 높일 궁리뿐이다. 여당도 새로운 정치에 적응하지 못했다. 촛불집회가 장기화하고 폭력이 등장하자 여론의 반전만을 기다렸다. 야당과 마찬가지로 촛불시위 정국에 무임승차 하려 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진정 국민을 위하고자 한다면 촛불시위를 통해 나타난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들기보다는 먹거리에 대한 불안을 뿌리뽑아서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안겨줘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위생 검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의 기능 및 예산을 보강해야 한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농수산물 및 가공 식품류의 수입은 물론이고 폭리를 노리고 저가의 저질 먹거리를 밀반입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의 위생 상태를 검사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더 이상 인력과 장비가 모자라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어민 그리고 가공 업체가 하나가 돼 우리 농수산물 및 음식품의 품질수준을 높여야 한다.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거리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과자와 라면에서 이물질 소동이 일어난다. 품질 개선은 소비자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생산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산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줘서 수입 개방의 파고를 헤쳐나가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 먹거리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 농수산물과 가공 식품이 세계 시장에서 자웅을 겨룰 수 있게 하는 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