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로 손자손녀의 재롱을 영상에 담고,예쁜 사진은 디지털 액자에 저장해 보관한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이들과는 PC로 화상전화를 하고,미니홈피에서 안부를 주고받고,인터넷 채팅도 즐긴다.

컴퓨터 게임에 푹 빠지는가 하면,카페 등 커뮤니티 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의견을 개진하곤 한다.

2030세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인터넷 공간이 노인층에게도 새로운 무대로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젊은층 못지않게 디지털기기에 익숙한 노인들이 많다.

소위 디지털 실버족(族)이다.

이들은 또한 웹버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노년층을 지칭하는 실버(Silver)의 합성어다.

생각해 보면 이들 세대는 라디오도 귀한 시절에 태어났다.

흑백TV와 컬러TV를 거쳐 이제는 휴대폰으로 주식거래를 하고,TV를 시청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칫 사회의 국외자로 전락하기 십상인 계층이었으나 발빠르게 정보화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디지털 실버족은 은퇴 후 자아실현의 공간으로,사회와의 소통수단으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노인세대와는 달리 이제 디지털 실버족은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 상징하는 정보혁명에 적응하지 못해 정보 격차를 가져오는 디지털 시대에,이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실천에 나서는 행동주의자들인 셈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연대로 구분하는 노인(the aged)이 아닌 경험이 많은 인생의 선배(senior)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노인이 과도한 위세를 부리는 것은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고,우리들이 그것을 참아주고 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젊은이들과 당당히 겨루는 디지털 실버족에게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문화에 젖은 실버족에게는 또 하나 다행스런 일이 있다.

괴테는 "인생의 참다운 기쁨은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는데,디지털기기가 바로 시공(時空)을 떠나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어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