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6월이 되어서야 그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길고 혹독한 겨울 동안 쌓였던 눈과 얼음이 그제서야 싹 물러난다.

그 자리에 수수하고도 기품 있는 우리 들꽃이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산 초원지대에 하루가 늦을세라 무리지어 피어나는 들꽃 풍경은 정말 환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백두산 들꽃 감상 길은 서쪽 산문으로 오르는 게 좋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왕지 일대에 붓꽃,수리취,물매화 등이 피고 진다.

해발 1700m 높이의 평지인 '고산화원'은 9월 초까지 끊이지 않는 들꽃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큰원추리와 금매화,바이칼꿩의다리와 개불알꽃 등 희한한 이름만큼이나 예쁜 들꽃이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눈을 들어 멀리 보면 호랑이의 등줄기 선을 닮았다는 백두산 줄기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고산화원 가까이에 금강대협곡이 기다리고 있다.

12㎞나 뻗은 V자 협곡이다.

한반도에 백두산만큼 깊은 산도 없지만 그런 협곡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험상궂은 협곡이다.

원래는 원시 그대로의 숲 뒤에 숨어 있어 아무도 몰랐는데 대형 산불이 그 숲을 휩쓸고 간 뒤에야 알려졌다고 한다.

고산화원에서 금강대협곡까지는 과연 사람의 손길이 한번도 닿지 않은 정글을 연상시킨다.

까마득히 솟은 나무는 하늘을 가려 햇빛을 차단하고 축축한 지표면에는 TV 속 공룡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 커다란 잎을 펼치고 있다.

용암에 의해 깊이 뚫린 땅 밑으로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제자하도 경이롭다.

천지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나 있는 계단길 옆 능선에도 어김없이 우리 들꽃이 만발해 있다.

급하지 않게 내리닫는 산줄기가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하다.

캔버스에 초록 물감을 덧칠한 것 같은 진초록 지표면은 여기저기 울긋불긋 새 봄의 기운을 절창한다.

낮게 깔려 고개를 세운 노랑만병초가 특히 마음을 싹 빼앗아가는 것 같다.

그 수수한 노랑 꽃색이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거친 눈과 바람에 꺾이지 않고 또다시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인다.

백두산의 명동 격인 북쪽 산문은 장백폭포가 시원하다.

소천지 일대에 다투어 피어나는 들꽃 풍경도 그림 같다.

노랑만병초,비로용담,미나리아재비 등 시간의 흐름에 맞춰 군락을 이루는 꽃들이 소천지 일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