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주민 "조류 불법사육 어제오늘일 아니다"…`뒷북 행정' 비난

지난 5일 서울 광진구청 내 자연학습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조류가 발견된 데 이어 11일 또다시 송파구 장지지구 내 농가에서 AI 감염 조류가 확인됨에 따라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민들과 지역주민들은 "문정.장지지구에 불법 사육해온 닭과 오리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진작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방역 당국은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불법사육 조류 긴급살처분…주민들 "뒷북 행정"

송파구는 장지지구 내에서 AI 감염 조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공무원 250여 명을 투입조와 통제조 등으로 나눠 현장에 긴급 투입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얀색 방역복을 착용한 통제조 공무원 20여 명은 오후 6시30분부터 붉은색 유도봉을 들고 문정지구 및 장지지구 입구에서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또 방역복에 마스크, 장갑까지 착용한 투입조 공무원들은 20여 명씩 조를 짜 AI 발생 지역 내에서 농가들이 불법사육해온 조류 8천여 마리를 구청 청소 차량에 옮겨실어 인근 구유지로 옮겨 살처분하고 있다.

하우스에서 닭과 오리를 사육해온 농가 주민 10여 명은 문정지구 입구 부근에 놓여있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 앉아 당국의 조류 살처분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농민들은 "아직까지 당국으로부터 어떤 자세한 이야기도 받지 못했다.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광진구에서 AI 감염 조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적극 대처하기 위해 문정.장지 지구에 있는 조류들에 대해 지난 8일 국립수의과학원에 감정을 의뢰했다"며 "이날 AI 발생 소식을 접하고 전 직원을 비상소집해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닭과 오리가 불법사육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며 "진작에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정동에 사는 이모(56)씨는 "문정동에 법조타운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문정.장지지구에는 농가보상을 받기 위해 불법으로 닭과 오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며 "광진구에서 AI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부 김모(59)씨도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닭.오리를 사육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작년 겨울부터 보상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키우기 시작했다"면서 "4∼5일 전에 이곳에서 닭을 사가려 했는데 정말 큰일 날뻔했다"고 말했다.

◇ 시민들 "확산하는 거 아니냐" 우려

시민들은 불과 7일 만에 광진구와 송파구에서 잇따라 AI 감염 조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이모(24.여.대학생)씨는 "AI 조류가 곳곳에서 발견되는걸 보면 AI가 이미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것 같은데 발생한 곳에만 방역작업을 진행한다고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며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주부 유모(50)씨는 "국민에게 무조건 `AI 조류를 안 먹으면 된다', `익혀 먹으면 된다'고만 하지 말고 방역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당국이 제발 투명하게, 모두 드러내놓고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박모(30.회사원)씨는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계란을 먹었는데 솔직히 불안하다"고 말했고 문정역 부근을 지나던 한 60대 남성도 "AI가 서울에서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닭고기도 안 사먹고 있는데 이제 계란도 못먹을 것 같다"고 크게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