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배 만드는 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다.

두 차례나 차관 조달에 실패한 정 회장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A&P 애들도어'라는 금융회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롱바톰 회장은 한국의 상환 능력이 의심스럽다며 거절했다.

정 회장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북선이 그려진 쪽을 펴 보였다.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내준 민족이오." 롱바톰 회장은 차관을 주겠다고 수락하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한국에 건조 주문을 내겠다는 회사를 찾아오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과 50만분의 1짜리 지도,그리고 스코트 리스고에서 빌린 26만t급 유조선 도면만 갖고 선주들을 찾아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1971년 말 그리스 해운회사 리바노스(LIVANOS)로부터 2척의 초대형 유조선(VLCC)을 수주했다.

영국 애들도어로부터 조선소 건립에 필요한 돈도 끌어냈다.

창업자의 의지 하나만으로 탄생해 올해 36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은 이제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조선업뿐만이 아니다.

대형 디젤엔진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남미와 중동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동식 발전설비 역시 세계 1등으로 대접받는다.

현대중공업이 현재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제품은 모두 12개에 달한다.

특히 조선 분야는 1983년 이래 지금까지 25년간 단 한 차례도 정상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현대중공업에 아주 친숙한 수식어가 됐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두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매출액은 15조5330억원으로 직전 연도에 비해 24% 늘었다.

영업이익은 1조7507억원으로 무려 100% 가까이 증가했다.

수주도 호조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수주 물량은 역대 최대인 250억달러였다.

이는 당초 목표 181억달러를 35% 이상 초과한 것이다.

5년 전인 2002년의 58억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세계 1위 자리에 도취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원자재가격 급등,환율 변동,인건비 상승,불안한 국제정세 등 외생 변수들이 경영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킴에 따라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서두르고 있다.

'글로벌 리더-미래를 개척하는 현대중공업'을 비전으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래비전에는 2010년까지 매출 288억달러를 달성해 세계 최고의 종합 중공업회사로 발돋움한다는 장기 발전 목표가 담겨 있다.

조선 부문의 의존도를 낮추고 엔진기계,환경 관련 사업,기계 및 플랜트 부문을 중점 육성해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현대중공업은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신성장 동력에 대한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울산과 군산에 도크 1기를 각각 건설하고 있다.

울산 해양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해양도크는 길이 490m의 100만t급 도크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초대형 해양설비인 FPSO와 컨테이너선 등의 건조에 활용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추진해 왔던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2007년 8월 총 300억원을 투자해 충북 음성에 30MW급 공장을 설립했다.

올해 4월부터는 태양전지도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KCC와 합작법인을 설립,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