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록 < 충북대 교수·법학 >

1993년부터 러시아에선 새로운 배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9개 주에서만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재판이 일반 법관재판에 비해 선택의 정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배심제 시행 직후인 1994년 지역관할사건 중 배심재판 비율은 무려 20.5%나 됐다.

이게1995년엔 30.9%로 증가하더니 1996년 37.3%,1997년 36.8%,그리고 1998년에는 43.2%까지 꾸준히 증가함으로써 배심제가 나름대로 잘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심제는 일반 국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되찾고,법관이나 검사의 권한남용을 방지함으로써 소위 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국민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법제도를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적으로도 배심제와 같은 국민참여 재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캐나다,호주,뉴질랜드,프랑스,스페인,러시아,홍콩,스리랑카,사이판 등 세계 60여개 국가에 이르고 있음은 그리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법률서비스의 개혁이라는 국민적 열망에 따라 2007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금년부터 배심제가 도입됐다.

그런데 도입당시의 관심과 기대와는 달리 현재 배심재판은 전국적으로 단 3건,비율로는 전체사건 중 약 0.1%에 불과하다.

이는 한 해 약 30만 건 이상의 배심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미국,러시아의 초년도와 비교해 그 수치가 현격히 낮다.

이를 두고 한 지방법원장은 "우리 국민은 쉽게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배심제의 올바른 정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배심재판에서의 무죄율은 1994년 18.2%,1995년 14.3%.1996년 19.1%.1997년 22.9%,그리고 1998년 20.6%에 이른다.

이러한 배심재판에서의 무죄율은 일반적인 무죄율이 1994년 1.3%,1995년 1.4%로서 매년 거의 1%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거의 20배 이상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배심재판의 이용실적이 저조한 이유로 법의식 부족이나 온정주의,그리고 배심제의 대국민 홍보부족을 꼽기도 한다.

더욱이 우리의 배심제는 중죄사건에만 해당되고,특히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배심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에 더해 검찰은 배심재판의 결과에 대해 언제라도 항소할 수 있고,이 경우 2심에서는 배심제를 아예 선택할 수조차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심재판에서의 무죄율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일반적인 무죄율은 1%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이 러시아와 같이 20%대로 높아진다면 누구라도 배심재판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배심제가 그동안 팽배했던 사법불신의 골을 메우고,진정한 대국민 법률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촉매제로 정착하려면 누구라도 배심제를 우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배심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물론 배심재판에서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증거제출과 증인신문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특히 그동안 법관의 최종 판단이 검찰의 기소사실과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이제는 배심원의 판단에 구속되거나 최소한 이에 적극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참여 제고를 통한 법률서비스 개혁' 이라는 배심재판제 도입 취지를 살려나가는 길이다.

배심재판의 선호도를 높이는 것이 일차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