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피아노 60대 전시해 마음껏 연주… 업계 첫 '체험공간'

대기업에 재직 중인 이모 상무(48)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에게 그랜드피아노(GP)를 사 주고 싶었지만 고민이 많았다.

대당 500만원에서 2000만원이 넘는 그랜드피아노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기 전에 쳐볼 수 있도록 여러 대가 비치되어 있는 대리점을 찾기 힘들어서였다.

한 대리점 주인은 이 상무에게 인천 가좌동에 있는 영창피아노 공장을 찾아갈 것을 권유했다.

이 상무는 딸과 함께 공장 내 'GP컬렉팅홀'을 방문한 뒤 그랜드피아노가 무려 60대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상무는 "자동차 시승은 해봤어도 몇 십대의 피아노를 시연한 것은 처음"이라며 "직접 쳐보고 고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영창악기(대표 박병재)가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회사는 2006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뒤 박 대표의 주도하에 피아노 생산라인을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바꿔 생산성을 30%가량 늘리는 등 혁신을 계속해왔다.

최근에는 국내 악기업계에서 선례가 없는 색다른 전략을 도입했다.

이른바 '체험마케팅'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공장에 신설한 250㎡ 규모의 피아노전시장에서 고객들은 시간제한 없이 그랜드피아노를 마음껏 연주해본 뒤 선택할 수 있다.

영창이 이 같은 공간을 마련한 것은 웬만한 승용차 한 대 값에 달하는 GP를 체험해 보지도 않은 채 사도록 하는 업계 관행이 소비자의 욕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동안 GP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은 백화점에서 한두 대 정도 접해보고 선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피아노 회사에는 체험마케팅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최초"라며 "프로연주자와 전공자를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분당 본사에도 10여대의 GP를 전시한 공간을 마련하고 고객의 취향에 맞는 GP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한 판매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간 한 달 평균 30여대가 팔렸던 GP는 전시장 설치 이후 월 평균 80대 수준으로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체험마케팅에는 다른 악기들도 포함된다.

영창악기는 용산 아이파크몰에 270㎡ 규모의 '명품악기관'을 운영해 피아노를 비롯,올해 새로 출시한 기타,바이올린 및 관악기류 등의 일반 악기를 전시하고 있다.

회사는 이곳에 '이벤트파크'라는 20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연주 공간도 마련,프로연주자를 포함한 일반인에게도 무료로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악기회사뿐만 아니라 음악을 가까이 하는 문화의 전도사로 거듭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