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할리우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영어 제목은 "부치 캐시디 앤드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이다.극중 배역 두 명의 이름이 제목이다.'칠수와 만수' 스타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그런데 오래 전 한 담당자가 이 영화 제목이 사람 이름인 줄 모른 채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곧이곧대로 한 단어씩 사전을 찾아보니 부치는 푸줏간(butcher)과 관계가 있는 단어로 연결되고,캐시디는 사람 이름, 선(sun)은 태양,댄스(dance)는 춤,키드(kid)는 꼬마라는 뜻이 나왔다.결국 이 영화 제목이 '푸줏간 캐시디와 태양춤 꼬마'로 번역된 일이 있었다.영화제목 번역 역사상 불멸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뿐인가."How do you do?"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로,"See you later"를 "두고 보자"로 해석하는 유머도 나와 있다.LA에서 한 교포가 경찰에게 과속으로 적발됐을 때 깜짝 놀란 나머지 영어로 "Look at me once"(한번만 봐주세요)라고 했더니 한국 사람을 자주 적발한 미국경찰이 "No soup"(국물도 없습니다)라고 응수했다는 유머도 돌아다닌다.이러한 농담들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모두 영어로 인해 곤혹스럽고 힘든 우리의 모습을 은연중에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어는 어느새 너무나도 깊숙하게 우리의 삶에 침투해있다.예를 하나 들어보자.케이디시,케이엘테크,이니시스,유니더스….바로 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된 벤처기업의 이름들이다.엘에이지오미디어 엘우드 베자비스타 벨뷰….이들은 바로 1월 하순에 신설된 법인명의 일부이다(한국경제 2월2일자 13면 참조).아이를 출산하면 한글로 이름을 짓지만 이제 기업을 출산(?)하면 이름은 거의 다 영어로 짓는 것 같다.지난 1월 하순 신설된 법인 640여개의 이름을 보면 90% 이상의 이름에 영어단어가 일부 혹은 전부 들어가 있다.돈 버는 조직의 이름을 영어로 지어야 왠지 신뢰가 가고 시대에 맞는 느낌이 난다는 얘기는 우리의 인식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는 얘기다.

금융 분야만 해도 그렇다.스위스에 있는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사내에서 영어만을 사용한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린다.첨단 금융분야의 기업들이 주로 미국기업이다 보니 첨단 상품,전략,기법 등이 영어로 표현되고 있다.새 정부는 금융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의 일부로 보고 본격적인 육성책을 시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금융전문인력의 양성이다.그런데 영어가 자유롭지 못하면 전문인력으로 인정되기가 힘든 상황이다.거꾸로 영어가 가능한 전문인력은 국내만이 아니라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금융허브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얼마 전 인수위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몰입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근본을 모른다는 등 별의별 비판이 다 쏟아지고 있다.한글과 영어를 다 같이 잘하도록 교육을 하자는 것인데도 이에 대해 한글을 무시하고 영어만을 강조하는 사대주의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더구나 이러한 지적은 신생기업 이름의 90% 이상을 영어로 짓는 모습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수출과 수입규모를 더해 7000억달러가 넘고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志向)하는 나라로서 이제 몰입이 아니라 몰입제곱 교육을 해서라도 미래세대의 영어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태양춤 꼬마'라는 식의 번역은 이제 현재 세대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