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욕할 때는 흔히 개나 돼지 등의 동물을 들먹인다.더욱 모멸감을 주고 싶을 때는 '버러지 같은 놈'이라며 벌레를 빗대 그 사람의 속을 헤집어 넣는다.이 '버러지'는 10ㆍ26 만찬장에서 김재규 전 정보부장이 차지철을 향해 총을 겨누면서 했던 말이기도 해,한동안 입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런 벌레들이 이제는 욕으로 인용될 대상은 아닌 것 같다.대체의학으로 어엿이 의료계에 진출하면서 난치병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혐오스럽게 여겨졌던 구더기의 활약은 대단하다.생체조직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 채 세균만을 삼키고 새살을 돋게 한다.구더기 한 마리가 0.3g의 고름과 죽은 살을 5분 안에 없앨 수 있다니 그 위력이 실감난다.

과거 우리 논에서 흔히 보았던 거머리의 경우는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의료기구로 공식 승인을 할 정도다.혈액의 흐름이 원활치 못한 부위에서 거머리가 발휘하는 흡혈능력을 인정한 것이다.약물로 잘 낫지 않는 대장염 치료를 위해 돼지의 편충을 이용한 치료법도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벌레뿐이 아니다.이제는 건선이나 근육통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닥터피시요법,벌의 침을 이용한 약침요법도 일반화되는 추세다.의료계에서는 이러한 치료법들을 통칭해서 '생물요법'이라 부른다.살아있는 생물을 치료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우리 의료계도 생물체를 이용한 치료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양방과 한방업계의 전문가들이 학회를 결성한 상태여서 가시적인 성과도 기대된다.

지저분하다고 버림받았던 구더기가 욕창을 치료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고,종아리에 붙어 피를 빨아먹던 거머리가 죽은 조직을 살리는 현대의학의 총아로 각광을 받고 있다.하찮고 쓸모없다던 벌레들이,멸종되기를 바랐던 벌레들이 인간을 위해 이토록 효자가 될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앞으로 어떤 벌레가 불치병을 고치는 해결사로 등장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