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오일쇼크가 전 세계 경제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1973년 서방 언론은 불붙은 막대로 지구를 달구는 아랍인의 모습을 그린 만평으로 아랍 중심의 국제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겨냥한 아랍의 자원 민족주의가 발동하면서, OPEC가 이 해가 들어설 무렵 배럴당 2달러59센트 수준이던 중동산 원유가격을 1년 만에 11달러65센트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1차 오일쇼크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의 배럴당 가격은 새해 벽두인 2일(현지시간) 장중에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00달러를 돌파했다.

30여년 전 산유국의 일방적 인상이 유가 폭등의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중동을 중심으로 한 OPEC 회원국들의 의도적 고유가 정책과 함께 달러화 가치의 계속된 하락이 직접적 원인이다.

아울러 이런 현상적 원인의 뒤에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원유 소비에 투자 부족 등으로 소비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생산이 겹치는 '구조적 요인', 그리고 서방국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투기펀드의 준동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8년 벽두에 나타난 배럴당 유가 100달러가 단순히 일시적 쇼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런 원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춤추는 기름값..100달러는 약과
석유거래의 기준 수량인 1 배럴(= 158.9ℓ)의 용량은 우리가 흔히 보는 금속제 드럼통(200ℓ)보다 상당히 작다.

1 배럴 만큼의 WTI 원유를 정제하면 통상 12.7ℓ의 휘발유와 60.38ℓ의 중유, 41.31ℓ의 경유와 그 외 등유, 액화석유가스(LPG), 나프타 등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 수량의 석유제품을 얻기 위해 세계가 지불해야 했던 가격은 60달러대였지만 이제는 그보다 60∼70%나 오른 100달러를 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가전망은 점점 더 비관적이 되고 있다.

'퀀텀펀드'의 공동 설립자이자 상품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이미 지난해 초 "유가가 2009년에서 2013년 사이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극단적 시나리오를 일찌감치 제시했다.

아직까지 충분히 더 오를 여지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투자가들에 비하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전망해오던 에너지 전문 분석기관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전문 분석기관인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지난해 11월 30일 수정 유가전망에서 세계에 원유공급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경우 WTI의 올해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8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고 두바이유 역시 2.4분기에 100달러선을 넘은 뒤 3.4분기에 평균 104.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 독일 에너지감시그룹(EWG)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전망대로 만약 세계 원유 생산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매년 7%씩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면 유가는 더 이상 전망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세계 석유공급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EWG와 같은 비정부 기구의 견해만은 아니다.

프랑스 국영 에너지사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토프 드 마르저리는 지난해 10월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석유관련 회의에서 "이라크와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에서 추가 산유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세계 산유량을 (현재의 하루 8천500만 배럴에서) 1억 배럴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 60弗 이상은 거품?
몇 년 전만 해도 세계를 스태그플레이션에 빠뜨릴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되는 유가 전망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는 데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유가가 아직 실질기준으로는 30여년 전 오일쇼크 때만 못하다는 점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30여년 간의 물가 상승요인과 함께 에너지 가운데 석유의존도가 지난 1차 오일쇼크 당시 60%대에서 현재 40% 선으로 낮아진 점을 고려하면 당시와 같은 수준의 충격이 가해지는 이른바 '유가 임계치'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151.56달러선이다.

다행스럽게 두바이유가 아직 배럴당 90달러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고 설사 100달러선에 도달하더라도 실물경제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는다는 설명이지만 뒤집어보면 경제에 내성이 있는 만큼 유가가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는 구조적 요인 외에 상당한 금융적 요인이 가세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로 투기자금이 원유 시장에 몰려들기도 하지만 산유국들 역시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의 실제 가치가 하락하는 만큼, 이를 벌충하려 가격을 더 높이는 쪽으로 움직일 공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견딜 수는 있다고 해도 유가가 수급 이외의 요인에 의해 요동을 치다 보니 적정가격을 웃도는 거품도 커지고 있다.

2006년 10월 OPEC 회의에서 도이치뱅크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발견비용과 세금, 판매마진의 3가지로 석유가격이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유가의 적정수준은 과거에는 대략 발견비용의 3배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세금 비중이 높아져 4배까지 상승했다.

현재 발굴비용이 대체로 배럴당 15달러선으로 추정되므로 유가의 적정수준은 60달러선이며 나머지는 '투기 버블' 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 '공급부족-투기 확대-급등' 악순환
도대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렇게 유가가 치솟는 근본 원인은 뭘까.

이에 대해 서방진영과 산유국들 모두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수요 급증을 꼽는데 이론이 없다.

지난해 12월 14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 보고서는 올해 세계 석유수요가 하루 8천780만 배럴로 올해보다 21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OPEC 산유국들이 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비OPEC 산유국들의 생산량은 하루 110만 배럴 밖에 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OPEC가 11월부터 하루 50만 배럴 증산에 들어갔지만 실제로 증산물량은 수요 증가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더구나 증산 물량이 시장가격에 영향을 끼치려면 내년 1.4분기 말은 돼야 한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어서 어긋난 수급구조가 해소되려면 아직 '고난의 행군'이 필요하다.

어려운 수급상황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투기자금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경기 둔화, 금리 인하로 미국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줄어든 가치를 벌충하려는 헤지펀드들이 원유 선물시장으로 몰려들면서 12월 셋째 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WTI 선물 순매수 포지션은 12만계약(옵션 포함)선으로 한 달 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 연초에 비하면 3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투기자금 자체보다는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10월 작성된 '고유가 원인과 영향' 특별보고서에서 "최근 수년 간 고유가가 선물시장으로 투자 및 투기자금의 대규모 유입을 불러와 유가 변동성을 높이고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런 현상들은 기본적으로 석유수급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급부족이 투기자금 유입을 낳고 이를 배경으로 유가는 하루에 배럴당 3달러 이상의 요동치며 유례없이 큰 폭으로 급등하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급등'(Super spike)의 시대에 석유시장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