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르트 슈미트 < 조선호텔 총지배인 gerhard.schmidt@chosunhotel.co.kr >

고대 그리스 시대 40여㎞를 달려 전쟁의 승리를 알리고 죽은 병사를 기리려고 마라톤이 시작됐다고 한다.요즘이었다면 화상 휴대폰으로 그 자리에서 전장의 모습을 보여줘 그 먼 거리를 숨차게 뛸 일도 없었을 것이다.IT(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은 한국의 모든 시스템이 첨단이기를 기대한다.내가 근무하는 호텔도 첨단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여 고객들은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이테크 혁명 속에서 살고 있다.커뮤니케이션도 톡톡히 그 덕을 보고 있어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산더미 같은 정보에 묻혀 살다시피 한다.정보 범람의 와중에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도 모르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나 또한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세계 각국에서 자신들의 정보를 전하고 우리의 정보를 묻는 수많은 이메일을 보면서 하루의 시작을 실감한다.그리고는 어느 것부터 답변해야 할지,어느 정보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워 진다.

그래서 이메일을 본 후에는 반드시 아날로그식으로 오늘의 할 일을 펜으로 작성한다.나는 첨단기기 속에서도 항상 포켓 다이어리를 이용해 펜으로 직접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손으로 쓰면서 더 생각하게 되고 주의 깊어지며,그만큼 기억을 잘하게 된다.이것은 내게 수많은 정보들을 다시 정리할 시간을 주고 중요한 일을 구분 짓게 한다.커뮤니케이션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더불어 내 답을 기다리는 바쁜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려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손으로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바로 환영 메시지를 쓰는 것과 초대장에 사인하는 것이다.메모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보라는 매개체를 효율적으로 주고받기 위함이라면,이것은 정(情)을 나누기 위함이다.그리고 그것이 내가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누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이나 정보,감정을 글이나 말로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하이테크는 기계적 의사소통을 진보시키지만 인간미 넘치는 커뮤니케이션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커뮤니케이션은 하이테크와 아날로그를 조화롭게 활용해 정보와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넘쳐나는 정보의 풍요로움이 과분하지 않도록 자신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