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鎬善 < 국민대 교수·법학 >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집안 행사라고 하기엔 위태위태했던 지경까지 혈투를 벌이면서 대선 후보를 확정했다.

범여권이란 용어를 쓰는 측에서는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뒤집어 상표 하나만 달랑 새로 붙여 놓고 누가 입을지 아웅다웅하다가 급기야는 당초 약속한 순회 경선 대신 '원샷' 경선이란 희한한 규칙을 급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때는 야당 후보를 놓고 '한 방'이면 보낼 수 있다고 했던 걸 보면 그들에게는 '한 방'의 영어식 표현이랄 수 있는 '원샷' 개념도 마냥 새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지도자로 뽑아 달라고 나서는 사람들이,그것도 집권의 경험이 있는 쪽에서 '원샷'이니 '한 방'이니 하는 이벤트성에 매몰돼 있는 한 불쌍한 건 근근이 한푼 두푼 벌어 살면서 세금으로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민들이고,소망 없이 내일을 맞을 다음 세대들이다.

제대로 된 대선이 되려면 후보자는 물론 그가 속한 정당과 나아가 국민들 사이에서 신중하게 결정돼 고민 끝에 나온 정책 중심의 선거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후보가 발행한 '경부 대운하 공약'은 그나마 일찍 나왔기에 검증의 대상이라도 될 수 있지만 범여권에서는 자기들끼리의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투명성도 해결하지 못한 채 '한 방'의 로또 심리에 젖어 정책이라곤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하는 행태로 봐서 '원샷'으로 뽑힌 후보가 국가 운명을 '한 방'에 거꾸러뜨릴 악수(惡手)만 두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제3자의 관전평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선에 임박해서 나오는 정책일수록 싸구려 쿠폰이요,거의 골목길에 뿌려지는 전단 수준인데 그 선정성 하나만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누군가 연간 7%대의 성장을 공약하면,후발 주자는 8%를 호언하는 수준이다.

검증할 시간이 없는 정책,전문가와 국민들의 참여가 없는 공약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 손실은 얼마인가.

사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비교하면 근래 몇 번의 대통령 직접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의 선거 문화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나름대로 일궈낸 성과이고 자랑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형식과 절차에서의 변화라면 이젠 내용에서의 질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선거가 어느 정치집단이 정권을 획득하느냐의 제로섬 게임 사고(思考)를 넘어서 국가 공동체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씩 올리는 대(大) 이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책이 굳이 정치로 밥먹고 세금으로 생존하는 정치꾼들의 독점일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던져지는 의제(議題)는 속성상 포퓰리즘적이고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양화(良貨)가 악화(惡貨)에 의해 쫓겨나는 법칙은 정책에서도 그렇다.

정말 장래를 위해 긴요하고 거시적인 정책들은 싹 트기 어렵고 그늘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이젠 국민들이 이런 정책들을 직접 하나씩 꺼내 서로 토의하고 검증해 선거라는 무대에서 선수들이 무기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압력을 가해야 한다.

거기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하나씩 뿌리거나 논의해야 할 의제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자면 영어 공용화와 한자의 조기 교육제도 도입 같은 것이 그것이다.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격론에 휩싸일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정당과 후보자들이 부담스러워 내놓지 못한다면 뜻있는 언론,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나서서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표만 된다면 뭐든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정치판에서 국민들이 소외되고 영원히 세금만 빨리는 존재로 남지 않으려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끌어가는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대선이 국가 경영의 튼실한 씨앗을 뿌리는 파종 작업이 되지 못하고 그저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보다 나을 바 없는 이들의 입발림과 선거 놀음의 '한 방'이 되어서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