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마이크,허술한 추첨함,다소 매끄럽지 못한 진행….

'유전무죄' 등 불공정 판결을 막기 위해 일반국민이 형사재판의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모의재판은 3개월 뒤 정식 재판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씻어내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거의 1억원의 세금을 들여 새로 꾸민 법정은 한층 밝아지고 산뜻해졌다.

법정에 들어설 때 기립해 있는 방청객에게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목례를 하는 등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 군데군데 날림공사의 흔적이 보였다.

증거물을 대형 화면에 비춰주는 '실물화상기'를 조작하는 검사와 변호인의 손놀림도 아직은 어색했다.

법정 중앙으로 걸어나와 배심원을 바라보며 변론하는 모습도 그저 문서를 읽는 수준에 그쳤다.

가장 큰 문제점은 어려운 법률용어들이 사라지지 않은 것.절상(切傷·칼에 찔린 상처),범행현장 '요도'(要圖·요약도),제척사유(除斥事由·증거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등 배심원들이 거의 알아듣지 못할 단어들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우려와 달리 배심원들은 판사와 비슷하게 유죄 결론을 내렸다.

5 대 4로 갈린 의견은 1시간 반 남짓한 토론을 통해 8 대 1까지 합의가 이뤄졌다.

상당수 배심원들은 "여럿이 같이 하니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언제든 다시 참가하겠다는 열의를 보였다.

이날 재판을 진행한 한양석 형사합의27부 부장판사도 "(배심원이) 생각보다 훨씬 현명하게 증거들을 판단하고 평결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전국의 많은 판·검사들도 참석해 새 재판방식을 배우려는 열의를 보였다.

심지어 제주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그날 밤 돌아가는 마지막 비행기표를 끊어오면서까지 법정에 참석하기도 했다.

모의재판을 기획한 임성근 법원행정처 심의관(부장판사)은 "문제점들을 파악해 내년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첫술에 배부르지야 않겠지만 법원이 '국민 섬기기'에 좀더 노력한다면 국민참여재판이 빠르게 정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태웅 사회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