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상반기 재정수지를 무려 17조8000억원이나 잘못 계산해 발표하는 등 국가 예산회계시스템에 오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60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의 신뢰성에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지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전산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 재경부 당국자들의 '무능'도 문제지만 시스템을 부실 관리한 기획예산처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 필요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뭐가 문제였나

이번 17조원대 재정집계 오류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기획예산처의 시스템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재정수지 계산은 현재 기획예산처가 관리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각 부처 회계담당 공무원이 수입과 지출내역을 각각 인터넷을 통해 입력하면 이 시스템으로 정보가 모아져 통합 관리된다는 얘기다.

이 시스템의 개발은 삼성SDS 컨소시엄이 맡았고,재정수지 프로그램의 유지 보수는 컨소시엄 내 현대정보기술이 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프로그래머가 정부 지출 항목을 구성하면서 공무원의 '급여'만 포함시키고 '공제'를 산식에서 빼먹는 오류를 범했다.

프로그래머가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실수로 급여가 두 번 더해지도록 프로그램을 고쳐버렸다.

이런 황당한 산식은 정부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해 여섯 달 동안이나 재정수지 계산에 그대로 쓰였다.

상반기 공무원 급여 등 경상지출이 실제 11조원인 데도 28조원으로 부풀려진 것은 이 때문이다.

재경부는 올 들어 6월까지 태연히 이 시스템을 통해 정부 회계를 관리하고 재정집행 진도율을 계산해왔다.

매년 200조원에 이르는 돈이 드나드는 국고를 관리하는 재경부 관리들조차 6개월 동안이나 급여가 '더블'로 계산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매달 홈페이지에 공시까지 한 것.이번 사태는 관료들의 주먹구구식 행정과 임기 말 느슨해진 기강에서 비롯된 정부의 총체적 부실 및 무능력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3년간 600억원 쏟아붓고도

이번에 문제가 된 시스템은 정부가 발생주의·복식부기 기반의 회계 시스템을 구축한다며 2004년부터 3년간 600억원을 들여 만든 것이다.

그 전에 448억원을 들여 개발한 'NAFIS'는 4년 만에 폐기 처분했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1월부터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5주간의 시험 운영을 통해 검증을 마쳤다"며 완벽한 가동을 확신했다.

하지만 가동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지난 1월2일 일부 시중은행 고객들이 오전 내내 국세 납부와 관련된 인터넷 거래를 할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은행 측이 밝힌 원인은 국고 계좌로 보낸 납세자의 세금 납입 정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당시 금융결제원과 은행 측은 시스템 연쇄 장애의 원인으로 새로 도입된 시스템을 지목했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2월에는 대법원 해양수산부 등 일부 부처의 급여 계산에서 연이어 오류가 나면서 처리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10건의 입력 데이터 중 평균 4건 정도가 오류가 날 만큼 시스템이 불안정했다"고 밝혔다.

이러다 급기야 나라 곳간의 장부 기재가 잘못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시스템을 안정화시켜 나가는 게 보통"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3년간 600억원을 쏟아붓고도 검증이 덜 끝난 시스템을 섣불리 나라살림 계산에 썼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게 됐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