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거듭한 끝에 최근 들어 기업 인수·합병(M&A) 대상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모터라이제이션을 선도하던 포드를 제치고 미국 최대,세계 최대의 수식어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GM이 이처럼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LG경제연구원은 20일 내놓은 '조직 운영의 통념을 버려라'라는 보고서에서 GM이 1950년대 지나치게 엄격한 합리성과 명확한 조직 간의 역할 구분을 적용하면서 조직 사이에 싹튼 불신이 현재 GM의 위기를 불렀다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일본의 캐논은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개의 연구 개발팀을 운영했다.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런 중복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게 되고 서로의 지식이 공유되면서 회사는 최고의 성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원은 "경영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완벽하게 질서 정연한 조직을 만들거나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조직 구조나 운영에 있어 어느 정도의 무질서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무질서가 가져오는 첫 번째 혜택은 조직이 변화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회사민주주의'를 실행 중인 브라질의 셈코(SEMCO)에는 공식적인 조직도가 존재하지 않고 비즈니스 계획이나 기업전략,장기 예산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 CEO도 고정돼 있지 않으며 부사장 최고정보책임자(CTO) 표준 관례 등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셈코가 분열과 혼란으로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새로운 경영방식 도입 후 연간 매출 400만달러의 제조업 중심 회사에서 매출 2억달러가 넘는 서비스 및 하이테크 분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출하자는 아이디어 실행계획 등은 경영진이 아닌 일반 직원들이 주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상호 이해와 부문 간 협력 유도

무질서는 상호 이해와 부문 간 협력을 유도하기도 한다.

명확한 조직 간의 역할 구분을 통해 각 조직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높이고 조직 간 중복으로 인한 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조직운영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경영 현장에서는 정보의 흐름이나 각 부문 간의 협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조직 간의 갈등이나 분열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연구원은 "조직 간의 역할 구분이 모호하여 나타나는 중복이 캐논의 사례와 같이 부문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여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지식의 공유와 창조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새로운 발상과 혁신

무질서를 허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효용은 서로 전혀 다른 분야와 다른 생각들의 결합,창조적 갈등을 통한 혁신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규칙 준수를 중시하고 기존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조직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억누르려 한다.

그 결과,조직은 점점 창의성과 유연성에서 멀어져 변화에 실패하게 된다.

연간 외형 7조원의 통신기술 서비스 기업인 사익(SAIC)의 창업자 로버트 베이스터는 과학자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익은 이들의 창의적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관료적인 방위산업체에 다니다 뛰쳐나온 베이스터는 "관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