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在旭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공기업 문제가 또 터졌다.

공기업·공공기관의 감사 20여명이 '공공기관 감사혁신 포럼' 세미나를 열기 위해 열흘 간 남미 관광지로 출장을 떠났다.

여행경비로 1인당 800만원 이상을 모두 소속기관이 지출했다고 한다.

물론 감사라고 해외출장을 못 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감사혁신 포럼'이라고 한다면 감사업무에 대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출장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방문지가 브라질의 이과수폭포 등 남미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그리고 방문하겠다는 현지 공공기관도 감사혁신과 관련해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월 기획예산처가 공개한 공기업에 대한 경영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기업의 총부채는 2006년 말 기준으로 122조원에 이른다.

공기업 5개 중 1개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10개 중 9개는 2006년 순이익이 2005년보다 감소했다.

공기업 부채(負債)는 매년 늘어나 2006년 한 해만 20조원이나 불어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감시하고 경영혁신에 앞장서야 할 감사들이 오히려 예산 낭비성 출장을 간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것은 빙산의 일각(一角)에 불과하다.

순이익이 감소하고 부채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경영을 혁신하려는 공기업은 드물다.

기획예산처의 발표에 따르면 공기업 사장 가운데는 7억1120만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억8540만원의 연봉을 받는 감사가 있다.

공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이 대기업의 최고 1.7배나 된다.

성과등급이 최하위인 11등급의 평가를 받은 직원에게 성과급을 330%나 지급하고 처외조모 상(喪)에까지 위로금 200만원을 지급하는 등 각종 명목의 복지후생비를 지급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도덕적 해이 행위는 소유권이 불분명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사기업은 시장의 압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사기업의 존속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따라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달라진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면 이윤이라는 보상이 따르고 그 힘으로 기업이 계속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손실이라는 처벌을 받아,손실이 지속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러한 시장의 압력 때문에 사기업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산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과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는다.

그래서 사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자는 더욱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 없는 공기업은 사기업과는 달리 시장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영을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로 파산,청산,적대적 인수합병 등에 의한 퇴출 가능성이 낮아 공기업의 경영자는 소비자를 만족시켜 이윤을 크게 내고,자원을 절약해 비용을 절감할 인센티브가 적다.

그러므로 경영이 방만해질 수밖에 없고,사기업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수익률이 낮다.

주인이 없는 공기업은 정치인,관료,경영자가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구조로 돼 있다.

그래서 공기업은 정치적 간섭을 많이 받는다.

정치인과 관리가 공기업 경영자의 임면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공기업의 경영자들은 임면권자의 요구를 직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하산 인사다.

정치인과 관리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능력이나 자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공기업의 경영자 자리에 앉히고 임원이나 직원을 채용하게 한다.

이번에 출장을 간 감사들 중 상당수가 정치권 출신이라고 한다.

낙하산 인사로 인해 공기업 경영의 비효율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민영화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논의조차 중단돼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