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물건을 평가하는 기준은 경제 주체마다 다르고 그래서인지 얼마에 사겠느냐고 물으면 다 다른 대답이 나오게 된다.

물건의 경매가격을 상상해본다면 동일한 물건인데도 부르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여기 좋은 기계가 하나 있는데 이 기계에 대한 평가는 기업마다 다르다고 하자.물론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 기계를 가지고 얼마나 이익을 올릴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5억원쯤의 이익은 너끈히 올릴 수 있다고 보는 기업(기업1)은 이 기계를 5억원으로 내심 평가할 것이다.

반대로 이 기계를 가지고 5000만원 정도의 이익밖에는 올릴 수 없는 기업(기업2)도 있을 수 있고 이 기업은 기계가치를 5000만원이라 평가할 것이다.

누가 이 기계를 차지할 것인가.

만일 이 기계에 1억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면 1번 기업은 얼씨구나 하며 이 기계를 사갈 것이다.

기업2는 어떤가.

기업2도 이 기계가 있으면 좋다.

영보다 큰 이윤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2는 이를 사지 않는다.

즉 차지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 때문이다.

비용과 편익을 비교했을 때 비용이 크다는 판단을 하여 포기하게 된다.

결국 귀중한 생산재는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가장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업에 전달된다.

시장가격은 잔인하고도 무서운 신호다.

귀중한 재화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 선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독일 통일로 동독이 붕괴된 직후 동독을 여행한 친지가 전해준 얘기 중 하나가 기억난다.

그가 한 공장을 방문했는데 공장에는 포장을 뜯지 않거나 거의 쓰지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는 기계가 즐비하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아보았더니 공장 책임자가 유력한 공산당 간부의 친척인 터라 기계를 신청만 하면 공급이 잘 되었고,그러다 보니 필요성이 덜한 기계도 써먹을 데가 있다며 열심히 신청하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귀중한 생산재들이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공장에 전달되어도 시원찮을 판에 여러가지 이유로 엉망으로 배분되는 바람에 엉뚱한 공장이 이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이러니 공산주의의 치명적 실패 원인이 생산재 배분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이 하나둘 쌓이면서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결국 붕괴하였다.

<그림>에서 보듯 시장의 균형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이 가격이 비싸다며 인위적으로 가격 인하를 단행해버리면 떨어진 가격 하에서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그리고 초과 수요는 당장 문제를 야기한다.

길어진 줄,짧은 성공률,물건의 배급,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뒷돈과 뇌물이 바로 그것이다.

1700년대 말 프랑스에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뜨거운 가슴으로 가격을 함부로 건드리면 예나 지금이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은 무서울 정도로 정직하다.

시장은 다스리고 달래면서 부드럽게 다루어야 할 민감한 대상이지 엄포를 놓고 함부로 규제를 가할 대상이 아니다.

함부로 대하면 시장은 항상 보복을 한다.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조치도 장기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