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13일 오후.만두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35세의 신모 사장은 서울 반포대교 아래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신 사장은 유서에서 "쓰레기 만두라는 오명을 벗겨달라"며 "불량 만두 파동은 정부와 대기업,제조업체의 공동 책임인데 제조사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당시 대기업을 포함해 25개 식품회사에서 불량 만두소를 사용한 혐의를 발표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구체적인 리스트를 공개했다.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파장은 컸다.

쏟아지는 비난에 괴로워하던 젊은 사업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규모가 작은 다른 만두업체들은 줄이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실제 사법 처리 과정을 보면 2명의 만두소 공급업자만 불구속 기소를 거쳐 2005년 10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뿐이다.

죄의 유무나 경중과 상관없이 이뤄지는 무자비한 여론 재판이 불러온 최악의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수사기관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심심찮게 벌이는 언론 플레이는 사법당국의 수사망에 한번이라도 걸려든 피의자 재산과 명예 등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주기 일쑤다.

불법 로비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은 "1심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나중에 2심 또는 3심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다 잊혀져 버리고 말기 때문에 어떻게든 첫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피의 사실 공표는 피의자 보호뿐 아니라 재판의 공정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이 여론화되면 사법부를 압박해 공정한 재판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미국 등에서는 검찰 발표가 아니라 실제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재판 과정부터 보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구속영장 청구나 구속 집행 때 마치 피의자의 죄가 확정된 것처럼 혐의를 발표하고 대다수 언론이 이를 가감없이 보도하고 있다.

헌법 제27조 4항은 '피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을,형법 126조는 '기소 전 피의 사실 공표 금지' 조항을 담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지난해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론스타펀드와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벌인 것도 따지고 보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단계에서 범죄 혐의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관행으로 인해 초래됐다.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당시 "모호한 의혹 제기며 설득력이 없고 구체적인 증거도 없다""검찰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며 검찰에 정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외신은 이를 큼지막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론의 힘을 빌려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한국적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김진흥 전 한샘식품 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한 공청회에서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3년간의 재판기간 동안 피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살아야 했다"고 토로했고,무려 세 번씩이나 구속 기소됐다가 모두 무죄로 풀려난 박주선 전 국회의원은 "피의 사실이 공표됨으로써 실추된 명예는 끝끝내 회복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