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鎬善 < 국민대 교수·법학 >

지난해 10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던 법무부가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당초의 입법 예고안을 일부 조정한 안을 최근 확정했다. 재계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이중대표소송,임원의 회사기회유용금지 및 집행임원제도의 도입이었는데 그 중 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이중대표소송 허용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법의 대원칙은 이사들이 책임을 지는 대상은 법인격을 가진 회사 자체이고 주주들 개인에 대한 책임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주주 개인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회사 전체 차원에서 경영재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중대표소송이란 자(子)회사의 주주인 모(母)회사뿐만 아니라 그 주주들에게도 자회사 이사들의 책임을 추궁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므로 법의 기본정신과는 배치된다.

이 부분은 재계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그 이론적 근거와 사례,입법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었다. 이중대표소송은 어느 나라에서건 입법된 사례가 없다. 미국의 경우도 지배회사의 영향력으로 인해 종속회사의 법인격이 부인(否認)될 정도에 이르는 등 지배회사를 통한 위법행위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개별 사안마다 인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에 확정된 안은 '모회사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을 보유한 모회사 주주에게 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부여한다'는 당초 안에 '모회사가 자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에 한해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선에서 이중대표소송제도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소(濫訴)를 방지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설명이지만 '실질적 지배'가 무엇인지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져야 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법무부는 회사 소유관계,이사와 집행임원의 겸임 여부,출자자 중복 여부 등 상세요건을 덧붙여 '실질적 지배관계'의 요건을 명확히 한다고 하지만,이는 법원에서 판례로 해석해야 할 일을 법률로 정하겠다는 것으로서 친절함을 넘어 법률 만능 및 법 형식주의의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결국 법적 논리가 허약하고 사회적 타당성과 합리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중대표소송제도를 성급하게 법제화하겠다는 무리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중대표소송제 도입의 취지는 모회사가 과반수를 출자한 비상장회사인 자회사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한 경우 주주인 모회사가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사실상 거의 없으므로 그 주주들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裏面)에 깔린 핵심 동기 중의 하나는 비상장회사를 통해 경영권 세습이 이뤄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경영권 세습의 문제는 기업회계와 상속증여세제의 투명성이 제고됨에 따라,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장의 경쟁원리와 주주들의 적극적 권리행사로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고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회사 역시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의 이사들을 상대하지 않더라도,자회사와 관련된 법적 주체들,예컨대 채권자와 근로자들에 의한 책임 추궁의 길이 열려 있다. 자회사 이사의 위법 부당한 행위에 대한 견제장치가 전혀 없다면 모르되,기존의 법규나 사법적 해석으로 책임추궁이 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도입하는 이중대표소송은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회사의 어떤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회사의 이사들이 굳이 적극적인 경영을 할는지도 의문이거니와 보다 근본적으로 모기업이 수익성이 있는 신규 시장을 창출하고 뛰어들겠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중대표소송은 이런 기업가 정신을 제어하는 심리장치로 남을 우려가 크다. 나비 날갯짓의 미묘한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증폭돼 토네이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검증되지 않은 섣부른 제도가 가져올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과 사회적 손실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적어도 시장에서 법은 뒷바퀴가 돼야지 앞바퀴가 돼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