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 시인 >

우리 동네 약국 한 모퉁이에 작은 포장마차가 있다. 호두 과자와 땅콩 과자를 판다. 병원 처방전을 들고 약국 가서 약 받아오다가 들르는 것이니 1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 그 가게를 찾는 격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그 집 단골이라고 생각한다. 과자보다는 커피나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 취향 때문에 그 집 과자를 많이 사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집 과자가 확실히 맛있기 때문에 나는 과자가 화두(話頭)가 될 때마다 그 집 제품이 다른 집 제품보다 우위라는 이야기를 꼭 한다.

나는 그 포장마차 주인을 잘 알지 못한다. 이름은 물론 어디 사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포장마차 주인은 내가 최초의 구매자로서 행동한 이후 지금까지 나에 대해 아주 행복하게 기억해 주고 있다. 두 번째 구매는 첫 번째 구매 이후 거의 1년을 넘고서야 이뤄졌다. 나는 약간 사무적으로 주문했는데 그 주인은 과자가 구워지는 동안 "또 오셨네요"라는 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보라색 옷을 입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고 정감 있게 말해 주었다.

물론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어떤 아득한 일까지 가슴 안에 새기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니 사생활 침해라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난 원수와의 일이 아닌 바에야 모두 자신을 화사하게 확장시키는 또 다른 인적 자원과의 조우(遭遇) 아니겠는가. 하늘의 선물이다.

그 포장마차의 주인은 젊은 여성이다. 말씨는 상냥하고 정중하며 옷차림은 평상복으로 단정하고 수수하다. 과자를 산 횟수는 겨우 6~7회가 될까 말까이지만 나는 그 집의 약 3년차 고객이다. 갈 때마다 대량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고작 두 사람이 먹을 만큼 그 정도만을 원하니 매출액에 큰 기여도 하지 못하는 고객이다. 그런 데도 그 젊은 주인은 내가 들를 때마다 넘치지도 않게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은은한 미소로 어제 본 사람을 대하듯 그렇게 편하게 나를 맞아 준다.

3년차 고객이다 보니 이제는 과자가 구워지는 동안 대화의 분량이 조금 더 늘었다. 대화는 그 내용이나 주제를 간추릴 수 있는 것도 아니게 진행되지만 이상하게도 활력을 얻게 된다. 그 젊은 주인도 내게서 어떤 힘을 얻는 얼굴이 역력하다. 자신은 전혀 그런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상상도 해 보지 않았겠지만 몇 분에 걸쳐 짧게 오고 가는 몇 개의 어절(語節)들은 마치 선문답 같다. 등 뒤로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도로에는 차들이 제 알아서 제게 맞는 속도로 휙휙 지나간다.

그러나 이 영역은 내가 들른 잠시 동안은 마치 솟대 없는 소도(蘇塗)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후 늦게 나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직전까지 열심히 일하고 철수하는 비정규직이지만 그 마차의 주인은 성공에 대한 자기와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신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와 그의 대화는 늘 그 꿈에 대한 대화가 된다. 그래서 과자는 더 천천히 구워져도 좋다.

최근에는 그 쪽으로 갈 일이 없더라도 일부러 가서 호두 과자와 땅콩 과자를 사와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집 과자의 맛에 혀가 길들여진 이유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기왕이면 그 좋은 사람에게 가서 제품을 사는 동안 즐겁기까지 해야겠다는 것,그러니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과 같은 성과라는 계산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되어 가고 있다. 그 집이 나를 붙드는 것은 과자의 맛만이 아니다. 그 밖에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니 설명하기 아까운 어떤 훈훈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던 호두 과자나 땅콩 과자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그 과자를 사기 위해 가능하다면 꼭 그 집 그 주인에게까지 가서 산다. 간판도 없는 그 작은 포장마차는 적어도 꿈과 맛의 변질이 없는 한 확고부동 고객 한 사람은 얻은 것이다. 어느 브랜드인들 고객의 '춘향이 마음'을 차지하는 이몽룡이고 싶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