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엄마가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안고 의사를 찾았다.

아이를 진찰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찰해 보니 문제 없어요. 열만 낮아지면 별 이상 없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열이 내리지 않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의사는 "검사 결과는 좋습니다. 별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더 아파하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가도 의사는 "별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자 어느날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난 '별 이상 없습니다'라는 병에 걸린거지요."

우리 경제가 좋지 않다.

대내외 여건의 악화로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경상수지도 적자로 반전(反轉)했다.

이와 같은 추세가 내년으로 이어지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4%대 중반 수준의 성장'을 예상하면서 이 수준이면 "별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민심에 민감한 여당이 '뉴딜 정책'을 내세우며 투자와 서민경제 활성화를 도모(圖謀)하고 있지만 "경제가 좋아도 민생은 어려울 수 있다"는 대통령의 진단과 부딪치면서 진전이 없다.

경제가 좋은데 어떻게 민생이 어려울 수 있을까? 경제가 좋다고 할 때는 주가 수출 외환보유고 등을 말하고, 민생이 나쁘다고 할 때는 서민생활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주가 수출 외환보유고는 경제의 일부분일 뿐이다.

주가는 수많은 기업들 중 상장기업들의 성적표에 불과하다.

수출은 외환보유고를 늘리지만 내수(內需) 없는 수출은 그 자체로 양극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상장기업들의 양호한 형편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형편을 함께 보고,수출과 극히 부진한 기업 투자 및 서민들의 소진(消盡)된 소비여력을 함께 본다면 결코 경제가 좋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건강상태와 검사결과를 같이 보면 아이가 별 이상 없다고 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와 민생(民生)을 분리해서 생각하다 보면 경제와 민생이 함께 하는 동반성장 전략에서도 경제와 민생이 따로 있는 것처럼 정책을 세우게 된다.

그 대표적 예로,지난 8월 정부·민간합동작업단이 발표한 '비전 2030'을 들 수 있다.

이 계획은 동반성장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 문건이다.

그런데 계획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이 계획은 '경제 따로,민생 따로'의 구도 하에서 작성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비전 2030'에서도 인적자본 고도화,사회적 자본 확충,능동적 세계화를 통한 성장잠재력 확충과 성장 복지 간의 선순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현 정부의 동반성장 전략과 유사하다고 선전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비전 2030'이 민생 복지에 치우친 동반성장 전략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우선 동반성장 전략을 추진하는 상황인식부터 다르다.

'해밀턴 프로젝트'에서는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를 대규모의 재정적자와 주요 성장촉진 영역에 대한 부적절한 투자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비전 2030'에서는 저출산·고령화,양극화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요인을 전략추진 배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는 현재 미국경제가 위기국면에 있다고 진단하는 반면,우리나라 비전 작업단은 저출산·고령화,양극화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정책면에서도 '해밀턴 프로젝트'가 성장과 안정 및 효율적 정부를 모두 강조하고 있으나 '비전 2030'은 보고서 모두에서 보듯이 민생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은 따로 갈 수 없다.

경제와 민생을 따로 볼 때 경제 위기를 민생 위기로 곡해(曲解)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게 된다.

우리 경제가 "별 이상 없습니다"라는 병에 걸리지 않고 종합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