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개념의 형성과 발전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AD 700~1000년에 아랍인은 하루의 낮길이가 변하는 것은 지구가 타원형 궤도로 움직일 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지구~태양 간 거리 때문임을 알았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이나 중국인도 일찍부터 이론적으로는 시간 개념을 알았다.

이에 반해 유럽인은 시간에 관한 지식을 실제로 활용했다. 시간 측정 능력이 인간생활에 침투하게 된 기원은 중세유럽에서 최초로 기계시계가 발명되었을 때부터다. 기계시계는 유럽인의 문화적 가치,기술변화,사회조직,인간적 성향 등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대포 인쇄술과 함께 유럽이 다른 문명을 능가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게 했다.

시계란 본래 '종'을 뜻한다. 종은 중세유럽 수도원에서 기도문 낭송시간을 알렸다. 또한 수도원 인근 농촌세계의 생활도 조정했다. 농촌에서 시간은 자연의 리듬에 따른다. 그 이상의 엄격한 시간 분간은 필요치 않았다. 상업발달로 도시가 발전하면서 도시인에게는 하루의 시간을 엄밀히 측정하는 것이 절실했다. 도시생활을 하려면 시간표현에 관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보편화 되어야 한다. 기계시계는 최초로 이탈리아 도시의 성이나 교회에 설치되기 시작해 1330년대부터 서유럽에 퍼졌다. 17세기에 추시계가 발명돼 시계 오차값이 하루에 1분,18세기에 몇분의 1초 이내,19세기 말에 몇 백분의 1초 미만으로 줄었다. 이 단계의 정확도는 시간 측정의 최종기준이던 지구운동 자체의 불규칙성을 드러낼 정도였다.

한편 떨어지는 추의 힘보다는 태엽으로 시계를 작동시키는 법이 터득된 후로 휴대용시계가 나와 사람마다 시계를 두루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시간규율의 기초가 마련되고 시간의 경과,경쟁,생산성,성취에 관심을 갖는 문명이 탄생했다. 20세기에 수정시계,원자시계가 도입되자 과학자들은 천체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시간 측정 방식을 포기하고 90억번 이상의 매우 빠른 진동수로 정해진 초를 기본 시간단위로 설정했다. 시간 측정의 기초는 천체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달력을 인간의 시간경험에 맞춰 만들기 위해 윤일이 아니라 윤초를 끼워 넣는다.

기계시계 발명이 혁명적이었다고 할 근거는 그것의 기술잠재력에 있다. 첫째,기계시계는 추로 작동한다. 추가 보조장치가 아니라 시계자체에 동력공급원으로 쓰인 것은 기계시계가 최초였다. 추가 갖는 지속적 힘은 정확한 시간측정에 필수조건이었다. 둘째,기계시계는 떨어지는 추의 에너지를 기어트레인을 이용해 전달했다. 고대인도 기어트레인을 알았고 물시계 부속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계시계는 시간 측정 자체를 기어작동으로 했다. 기어트레인 덕에 동력원이 나머지와 단단히 연결돼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했다. 연속적 시간을 단속적 기계움직임으로 측정한 것이다. 셋째,진동을 시간 측정 메커니즘으로 이용한 것이야말로 획기적이었다. 그 자체로서 지속적이고 고르며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을 또다른 지속적이며 고르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으로써 측정하는 것은 물시계,해시계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조건에 의존하기 때문에 항상성 유지가 불가능했다. 일정한 진동의 반복과 반복된 진동의 수를 계산하는 것,즉 균등하게 분리된 부분을 종합하는 것이 정확한 측정을 얻는 비결이었다. 진동속도가 빠르고 분할이 세분될수록 측정값 정확도가 컸다. 최초의 기계시계는 이 모든 것의 원형을 담고 있었다. 이후 시계는 모두 진동하는 디지털 원리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기계시계의 제동-이완,정지-운행 메커니즘은 시간을 진동으로 분할하고 지나가는 순간을 세서 이를 시간단위로 바꿔 표현하게 한 것이다. 또한 트레인을 제동-이완시켜 이렇게 센 것을 보거나 듣는 표시로 바꿨다. 이 메커니즘은 제동-이완을 거듭하며 그것의 주요 동인인 추나 스프링의 에너지를 보존,공급했다.

기계시계는 정밀,가격 면에서 새로 발명된 수정제어기(쿼츠)시계에 압도당할 때까지 약 700년 간 우세했다. 시계는 그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 자전거,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 분야에 미친 영향으로서도 중요했다. 시계만큼 인간의 생활과 노동의 성격을 변질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 기계기술이야말로 그 어느 생산 부문보다도 정밀기계 사용과 노동분화의 이점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몇 세기를 거치면서 시계제조업의 중심은 이탈리아에서 독일로,프랑스로,영국과 제네바로,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했다. 반도체를 이용한 기술의 거장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저임금으로 생산이 가능한 추적자들도 증가했다. 디자인은 수출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숙련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생산조건도 조성되었고,조립은 어디에서든지 가능하게도 되었다. 시계가 있으면 누군가 태엽을 감는다. 또다른 누군가는 이를 통제하리라.

경제사 산책을 마치며.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