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 논설위원 >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려면 문과(文科) 아니면 이과 (理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대학 전공이 결정된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과 출신은 상경 법정 어문학계 등으로,이과를 나오면 이공 자연 약학 의학분야 등으로 각각 진학하게 된다.

대학의 전공이 사회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문·이과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대부분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선택한 '과(科)'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문·이과 선택의 방향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교과과정 학문 등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이른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경제학(문과) 전공 학생은 수학(이과)을 등한시하고,경영학(문과) 전공학생 역시 공학기술(이과)을 외면하는 등 많은 학생들이 '과'라는 틀에 갇혀 있다.

게다가 '문과'과정인 사회과목을 한 시간 늘리거나 줄이면 '이과'과정인 과학과목도 당연히 한 시간을 늘리거나 줄여야 할 만큼 문과와 이과가 서로 엄격하게 대칭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일반 국민은 과학기술을 잘 몰라도 되며,과학기술자는 사회와 문화에 초연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까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사정들로 인해 학생들의 기초학력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가 하면 과학기술과 일반 문화간 괴리,이공계 기피 등 갖가지 사회문제까지 유발되는 등 그 폐단과 부작용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특히 학문간 경계가 사라지고 상호 융합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최근의 세계적인 흐름에도 부응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최근 포럼을 열고 문·이과 구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효율적인 교육과 학문 육성 등을 위해 인문학과 과학,인문사회계와 자연이공계 등으로 구분짓는 게 보편화돼 있는 실정이고 보면 문·이과 구분 그 자체를 무조건 매도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더욱이 우리의 입시 교육제도를 비롯 사회문화적 환경 등을 고려하면 현행 문·이과제도의 대안을 찾기도 만만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사적 근거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관습인 문·이과 구분에 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얽매여 있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더욱이 학문 등 모든 분야를 천편일률적으로 문·이과로 나누는 경직된 제도로는 교육과 학문의 수준을 높일 수 없음은 물론 이공계 기피현상 등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한마디로 글로벌 시대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문·이과제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과학기술계의 이번 문제 제기가 문·이과제 개혁을 위한 신호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