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슴같다 해서 이름지어진 소록도(小鹿島)를 생각하면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떠오른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니리/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니리." 천형(天刑)이라는 한센병에 걸려 붉은 황톳길을 밟으며 소록도로 향하는 시인의 애절한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다.

백사장과 송림,기암이 어우러져 다도해의 절경을 내다볼 수 있는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의 병원이 들어선 것은 1916년이었다.

이 곳에 강제 수용된 환자들은 일제의 철저한 격리정책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했고 사회의 냉대를 감내해야 했다.

불법감금은 예사였고 골수를 빼고 생식기를 자르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지금도 남아 있는 감금실과 검시실이 이를 웅변하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천사처럼 슈바이처처럼 환자들을 돌본 박애주의자들의 헌신적인 사랑도 곳곳에 배어 있다.

일본인이면서 환자들을 가족처럼 돌본 하나이 원장,1960년대 초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주도한 조창원씨,환자들의 손·발톱까지도 손수 깎아주었던 신정식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조씨는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모델이기도 하다.

환자들의 온갖 애환을 간직한 소록도병원이 내일로 개원 90주년을 맞는다.

어제는 전국의 한센인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고,45년간 이 곳에 머물며 맨손으로 환자들을 돌보다 지난해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벽안의 수녀 마리안느와 마거릿을 기념하는 명명식도 가졌다.

이제 소록도는 '천형의 섬'이 아닌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는 마음의 고향으로 변하고 있다.

해마다 관광객만도 20여만명이 찾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1년 후면 고흥을 잇는 연륙교도 준공된다.

찬란한 슬픔을 간직한 소록도는 더 이상 보리피리를 꺾어 불며 숨막히는 더위속을 헤쳐가야 하는 천리길 전라도 길이 아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