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왔다. 5.31지방선거 후보 대다수가 '내가 진짜 서민 후보'라고 주장하면서 생겨난 용어다.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고백도 가지각색이다.

'이사를 자주 다녔다''콩비지를 먹고 살았다''우물물을 뜨러 다녔다''어머니가 행상을 했다''온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

여당과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도 비슷하다.

그러나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털어놓은 두 사람의 월수입은 1500만원.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서민이었다는 얘기다.

서민임을 내거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데 한때나마 어려웠으면 힘든 사람 사정을 알겠지" 싶어 '찍어줄까'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 가난한 사람,현재의 서민은 절대 자신의 처지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부끄럽고 무시당할까 겁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잘사는 친구를 만나서도 괜스레 먼저 밥값 찻값을 내겠다고 나서고,병원이나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백화점에 갈 때도 너무 허름하진 않나 거울을 다시 보는 게 서민이다.

대충 입고 명품점에 들어갔다간 뭘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위아래 훑어보거나 행여 물건을 만져볼라치면 손에서 떼기 무섭게 와서 정돈해놓는 식으로 면박을 주기 일쑤인 탓이다.

"가난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을 벗어난 사람뿐이다.

자랄 때 고생했다고 퍼뜨리는 건 그때만큼 가난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서민'이미지를 만드느라 애쓰는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많은 후보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한국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서민 탈출'이 가능했던 바탕에 개인의 꿈과 의지 노력 외에 선행학습 없이도 학교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던 교육제도와 고도성장에 따른 기회가 있었음도 무시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든 가난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길은 누군가의 자선이 아니라 당사자의 노력,그리고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를 갖는 일이다.

서민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진짜 서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뭔지 자명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