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24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필리핀이 극도의 혼란 상태를 맞고 있다.


시위 군중들은 경제난,개혁 실패,부정부패 등을 이유로 아로요 대통령의 하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날 비상사태 선포 여파로 필리핀 페소화 가치는 달러당 52.14페소로 전날보다 1% 가까이 급락했다.




< 필리핀에서 24일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무장을 한 정부 군인들이 마닐라 북동부 퀘존시에 있는 육군본부앞으로 집결하고 있다.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쿠데타를 기도한 핵심 군 장교를 체포한 뒤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퀘존(필리핀)AP연합 >


◆경제난에 분노한 군중들


아로요 대통령이 최근 심각한 위협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필리핀의 경제난이다.


필리핀은 한때 아시아권에서 가장 잘나가던 경제를 자랑했던 나라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외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필리핀은 외채가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이르고,외채 이자 상환금만 지난해 필리핀 예산의 33%에 달한다.


전체 인구 8400여만명 중 40% 이상이 절대 빈곤층이다.


지난해 7월엔 아로요 대통령의 남편이 불법 도박 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민심의 분노를 더욱 샀다.


이는 아들과 가족이 연루된 부정 의혹까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군개혁 실패와 야권 반발


군부세력 내에서도 반(反)아로요 정서가 확산돼 왔다.


지난 22일 일부 군부세력의 쿠데타 기도를 포함해 지금까지 아로요의 축출을 노린 공식 쿠데타만 6차례나 된다.


그간 아로요 대통령은 부패한 정치 장성을 강제 전역시키고 군대 예산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가 미미하자 소장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증폭돼 왔다.


여기에 강제 전역당한 일부 군 장교들이 아로요 반대세력 정치인이나 기업가들과 연계해 아로요를 압박해 왔다.


야권의 반발도 큰 부담이다.


반대세력들은 아로요가 지난해 5월 부정선거를 통해 집권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국정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피플파워 희생양 되나


일각에선 아로요 대통령이 세 번째 '피플파워'(민중혁명)의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피플파워는 1986년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를 대통령직에서 축출한 주역이다.


그후 15년 뒤엔 부패 스캔들을 일으킨 조셉 에스트라다를 권좌에서 밀어냈고,이번엔 아로요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아로요의 하야를 요구하는 군중의 시위는 특히 25일로 예정된 '피플파워' 20주년 기념 행사를 맞아 정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를 예견한 듯 아로요 대통령은 하루 전인 24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한 필리핀 정계 관계자는 "지난 두 차례에 걸친 '피플파워'는 아로요에게 도움이 됐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아로요가 정치·경제·사회발전을 이룩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고 부정부패를 고착시켰다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