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레이테 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어수선한 필리핀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거주하는 대통령궁에서 20일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궁 경내에서 발생한 이번 폭발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ANC방송 등 현지언론은 군경 소식통과 목격자 등을 인용해 이날 사고가 대통령궁 근무자들이 반입한 녹색 쓰레기통에 숨겨진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사고는 하루 전날 군 참모대학에서 폭발물이 발견된 직후 터진 것으로 아로요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한 암살 기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설이다. 아로요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은 크게 군부와 이슬람 반군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군부다. 군부의 쿠데타 기도설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되기도 했다. 국방부의 부에나벤투라 파스쿠알 대변인(중령)은 작년 8월 기자회견을 통해 아로요에 반대하는 예비역 장교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인권단체와 함께 군에 무장봉기를 할 것을 부추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파스쿠알 대변인은 "이들은 아로요 하야 뒤 원로회의나 임시정부를 통해 집권하려는 음모를 갖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퇴역장성을 포함한 일부 야당 의원들도 아로요 퇴임 후 가칭 '집권위원회'를 통해 국정을 운영할 것을 공공연하게 촉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요구는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부의 반(反)아로요 정서는 집권 후 군 개혁 실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아로요는 수뇌부 교체를 통해 부패하고, 정치색이 강한 일부 장성들을 퇴역시켰지만 여전히 상당수 지휘관들이 부정부패 행각을 일삼고 있는데 개혁을 부르짖는 영관급 이하 소장파 장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패한 정치장교'라는 불명예를 안고 강제전역된 장교들로서도 아로요가 '눈엣 가시' 같은 존재로 비추어지기 때문에 복수 차원에서 암살을 기도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슬람 반군 세력들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 이후 아로요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남부 민다나오 섬을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 반군 세력과의 종전과 화해를 모색해왔다. 이런 노력의 가장 대표적인 결실은 공산당 산하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의 평화협정 재개다. 그러나 정치.경제.교리적으로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이슬람 세력 가운데 과격성을 띠고 있는 아부 사야프 등 일부 세력들은 정부군과 MILF와의 전투중지 합의와는 관계없이 계속해 무장투쟁을 통한 아로요 정권 축출을 부르짖어왔다. 특히 아부 사야프 등 일부 세력들은 아로요가 겉으로는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을 강조해오면서도 실제로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反테러전선'에 충실한 추종자로 행동해오고 있다는 인식과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저이다. 결국 이번 폭발물 사고는 범인이 누구인지 간에 아로요로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해 져야 하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노이=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s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