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 논설위원 > 서울대가 이달 초 2006학년도 정시 모집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내 주요 대학의 올해 입시도 막을 내렸다. 정시모집 결과는 우리나라의 대학과 학과별 인기순위 및 선호도 등을 가늠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이공계 기피문제 등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번 모집 결과를 놓고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의대 치대 한의대를 비롯 약대,수의대가 강세를 더하고 있는 반면 이공계 대학은 더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서울대 정시모집에서는 전기컴퓨터공학부가 합격생 123명중 88명만 등록함으로써 50명이상 모집학과 가운데 가장 낮은 등록율(71.5%)을 기록하는가 하면 수학교육과와 물리학부도 등록율이 각각 60.9%,81.8%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서울대 이공계 합격생의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대학의 의대 등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참여정부가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국정 아젠다로 내걸고 그동안 대통령 과학장학생 선발,병역특례 확대,이공계출신 고위공무원 특채 등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처럼 이공계 문제가 완화되기는 커녕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데는 기술자를 푸대접하는 우리의 문화에서 부터 낮은 보수 등 여러 요인들이 얼키고 설켜있음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학생들의 과학기피 현상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산업기술재단이 최근 CEO(최고경영자)특강을 실시한 전국 31개 고교의 교사와 학생 676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과목의 어려움'이 이공계 기피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나타났다. 물론 학생들이 어려운 과학과 수학을 선택하지 않으려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하지만 교육당국이 대학 별로 입시과목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선택형 수능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과학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형 수능이 도입되면서인문계는 아예 과학과목을 기피하고 있으며,자연계 또한 점수 따기에 유리한 과학1을 집중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수리과목의 경우에도 학생들이 미분과 적분,통계 등이 포함된 '가'형과 기본 수학인 '나'형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초 수학실력의 저하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이공계 신입생 가운데 미분과 적분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학생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한심할 따름이다. 이같은 과학과 수학 능력의 저하가 모든 대학에 공통된 현상은 물론 아니다. 서울대를 비롯 한국과학기술원(KAIST),성균관대 등이 산업계와 손잡고 반도체분야 등에 필요한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는가 하면 일부 전문대학은 산업현장 수요에 맞춘 커리큘럼을 개설,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판박이식 이론위주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는 이공(理工)계는 없고 이이(理理)계만 넘쳐난다'는 푸념이 교육계로 부터 터져나오겠는가. 과학과 수학 교육을 경시하고 실험과 현장실습을 외면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시급히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기본중의 기본인 과학적 소양을 갖춘 인력을 키워내지 못하면서 이공계를 살려내겠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