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의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는 공화당 전성시대를 연 인물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격인 클린턴이 진보적인 정책을 펴며 대통령에 당선되자,그는 보수파의 강령을 모은 10개 조항의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을 선거구호로 내걸고 1994년 선거에서 압승,상·하원을 장악했다. '미국과의 계약'은 정책공약으로 일종의 '매니페스토(manifesto)'였다. 매니페스토는 구체적인 일정과 예산을 갖춘 공약을 말하는데,3년 후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매니페스토를 제시해 집권에 성공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매니페스토는 이웃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매니페스토'라는 정책집을 내놓아 의석수를 40석이나 늘린 것이다. 매니페스토는 이에 앞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이미 그 진가를 발휘했었다. 라틴어로 '선언'이란 뜻을 가진 '매니페스토'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오는 5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내놓는 선거공약이 제대로 된 것인지 가려보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얼마전 '매니페스토 선거운동 추진본부'를 만들어 불을 지피면서,엉터리 공약이나 이벤트 공약을 응징하겠다고 의욕이 대단하다. 중앙선관위도 적극 거들고 나섰다. 매니페스토가 정착된다면 선거운동에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당선되면 "복지에 힘쓰겠다"느니 "벤처타운을 만들겠다"느니 하는 식의 막연한 공약들은 상당수 사라지고 그야말로 실현가능한 정책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비단 선거 때만이 아니고 지자체장의 임기 중 사후 평가도 가능하기 때문에 선심행정 역시 크게 개선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이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하고 또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과거 '낙천·낙선운동'에서 보았듯 객관성이 결여되면 운동의 의미가 퇴색될 게 뻔해서다. 아무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매니페스토'가 위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