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단일통화지역인 유로존 12개국에서 유로화 도입 이후 물가가 대폭 상승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라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24일 보도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유로존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로화가 도입된 지난 2002년 이후 4년동안 유로화가 물가 상승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답변이 무려 93%에 달했다. 유럽인들 대부분이 성별과 직업에 관계없이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 이탈리아 리라, 스페인 페세타 등이 유로화로 바뀐 이래 물가가 크게 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삿짐 회사 직원인 후앙 멜칸(44)은 "유로화 도입 이후 모든 것이 더 비싸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인들과 중앙은행 관료들은 유로존의 물가가 2%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유로화 도입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란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과 물가를 맡고 있는 중앙은행 관료 사이의 이 같은 인식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 몇 년동안 유로존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정체됐으며,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자주 구입하는 생활용품 값이 많이 뛰었다는 사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BNP 파리바의 이코노미스트인 켄 와트레는 유로존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 인상률이 유로화가 도입된 2002년 1%에서 2003년과 2004년 두 해동안 0.5%로, 2005년엔 0.2%로 오히려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소득이 늘지 않은 가운데 조금만 물가가 뛰어도 크게 오른 것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담배, 커피, 맥주, 사과 등 사람들이 자주 구입하는 품목들의 값이 상대적으로 많이 뛴 점도 시민들의 물가앙등 체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스위스 프라이부르그 대학의 연구원인 한스 볼프강 브라칭어는 중앙은행의 표준 물가상승률 계산과 달리, 담배, 맥주 등 시민들이 자주 사는 생필품의 비중을 높인 물가지수를 산출한 결과, 독일에서 2003년 이래 물가상승률이 3.7%로 중앙은행이 공식 발표한 1.5%보다 두배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4년동안 기업들은 컴퓨터, 승용차 등 큰 덩치의 생활용품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비용 인하 정책을 비롯해 아웃소싱, 생산성 증가 등의 노력을 통해 값을 내린 반면 맥주, 담배, 신문 등에 대해선 그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유로화 덕분에 사라진 옛 통화를 지난 2001년 마지막 유통됐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교해보는 습관도 물가상승의 체감온도를 높이고 있다. 집행위 설문조사에서도 유로존 시민의 43%는 비교적 값이 나가는 물건을 샀을 때 옛 통화로는 얼마였던 가를 따져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경향들이 결국엔 사라질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다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빠른 시일내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프리드리히(41)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지난 2001년 2마르크였던 것이 이젠 두 배인 2유로로 뛰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sang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