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결국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없었다. 서울대 조사위의 결과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에 실린 배아줄기세포 사진은 조작된 것이고 줄기세포를 배양·추출하는 '원천기술'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국민을 집단 최면으로 몰아간 한 생명공학 과학자가 '배양'한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1000억원대에 가까운 혈세를 쏟아부으며 이 연구를 지원한 정부나 심정적으로 그보다 더한 성원과 지지를 보낸 국민들은 이 거짓말의 쓰나미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환자 맞춤형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에 희망을 걸었던 불치병 환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과학계 종사자들,선량한 국민들은 심한 허탈감과 함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아마도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이는 황우석 박사 자신일 것이다. 국가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희대의 과학사기극 범법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만 하는 그의 처지는 깊고 깊은 고통의 골짜기에 떨어진 것과 같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기만과 거짓말로 연구 성과를 과대포장하고 사람들을 속이려고 했던 그 자신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기만적인 말과 행동들을 통절하게 반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끼친 누와 상실감과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그가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사람들의 신뢰를 상당 부분 훼손했다고 해서,그가 동물복제와 관련된 기술분야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생명공학 과학자라는 사실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골짜기에 떨어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에겐 아직도 희망과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절망과 쓰라림을 딛고 일어서서 고통의 골짜기를 제 힘으로 걸어 나오기를 바란다. 황우석 사태의 책임은 우리 국민에게도 일부 있다. 우리가 내면화하고 있는 조급한 실적주의,탐욕,피상성,상습화된 거짓말에 대한 무감각 따위가 총체적으로 빚어낸 사건이 이번 사태 아닐까. 한 방송사의 진행자가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황우석'이라는 고매한 함자 뒤에 존칭 대신에 일반적 호칭인 '씨'자를 붙였다고 사이버 공간에서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대중의 파시즘이라는 말을 얼른 떠올렸다. 파시즘이란 망령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보편적인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도덕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일체의 수단들도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얼굴 없는 대중의 '결집된 열정'이다. 그 결집된 열정은 한국사회가 여전히 성역화된 영역에서 무제한적인 특혜를 누리던 한 학자의 '거짓말'보다는 그 '거짓말'의 폭로로 인해 잃어버린 '국익'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걸 증명한 셈이다. 나는 수단과 절차의 도덕성보다 결과에 대해서만 과잉의 가치 부여를 하고,애국주의로 일체의 사실 관계를 따지고 절차와 방법을 죄악시하는 한국사회가 무섭다. 한국사회는 다름과 차이에 대한 관용이 아주 부족하거나 결핍된 사회다. 이를테면 외국인 이주 노동자,양심적 병역거부자,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소수자의 인권과 양심을 '애국'이나 '도덕'으로 포장된 '결집된 열정'으로 짓밟는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이렇듯 광기에 감싸여 각종 신드롬이 발호하는 천박한 대중이라는 토양이며,정치적 선전·선동에 부화뇌동하기 쉬운 '우리 안의 파시즘'이고,그것이 배양하는 거짓말과 피상성이며 폭력적 기질이다. 소수자의 비판과 제어기능을 마비시키고 한 방향으로만 내모는 대중은 파시즘의 희생제물이 되기 십상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