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지난 한 해의 남북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흐린 뒤 갬'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상반기까지 장기 소강국면을 지속하던 남북관계가 5월 개성 실무회담을 계기로 정상화됐고 이후 지금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간 대화 재개를 위한 개성 실무회담 합의에 따라 6ㆍ15 평양 축전에 남측의 정부 대표단이 참가했고 이 과정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ㆍ17 면담이 성사됐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복원의 결정적 계기로 자리매김됐다. 이후 15차 장관급 회담의 재개를 필두로 10차 경추위 및 각급 실무회담들이 개최되면서 남북관계는 본격적인 정상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관계복원 이후 남북관계는 당국간 대화뿐 아니라 경협의 진전 및 사회문화교류도 활성화되었는 바,2005년 남북교역규모는 사상 최초로 1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고 이산가족의 화상상봉이 새로이 시도됐으며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남측 민간인이 대거 방북하기도 했다. 특히 10월에는 개성에 남북경협사무소가 문을 열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당국자가 공동 근무를 시작한 한 해였다. 2006년 병술년에도 남북관계는 갠 날씨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남북 양측의 필요성에 의해 남북관계가 더욱 순항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남측의 대북 정책은 9ㆍ19 북핵합의를 계기로 '평화경제론'과 '2020 남북경제공동체 구상' 등에 기초해 보다 높은 단계의 경제협력과 대북지원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 역시 남측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지원 기대와 대미 안전판으로서의 역할 등의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이 6ㆍ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고조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올해 남북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외적 변수로서 북핵문제는 아직도 불투명의 영역에 놓여 있다. 북핵과 남북관계를 병행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2004년 7월 남북관계가 중단됐던 것도 사실은 그해 9월로 예정된 북핵 4차 6자회담을 거부하기로 한 북한의 전략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았고 2005년 5월 남북관계가 복원되는 시점 역시 북ㆍ미간 뉴욕접촉의 결과로 북한이 4차 6자회담 복귀 결정을 내린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북한에 핵문제와 남북관계는 전략적으로 상호 연계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핵이라는 외적 변수가 정체를 지속하는 한 2006년 남북관계를 낙관하기는 힘들다. 9ㆍ19 합의 이후에도 북미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핵 이외에 인권과 불법거래 등 양자간 새로운 쟁점이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관계의 가장 큰 장애요인인 군사장성급 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북핵의 교착국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9월 이후 당국간 대화가 합의만 있고 실제 성과는 없는 '말뿐인 남북관계'였다는 일각의 비판도 북핵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주체가 남과 북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정책적 의지와는 별도로 북핵이라는 외적 변수가 우호적 환경을 만들어내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 지금의 한반도 현실임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에 대북금융 제재 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하지 말도록 설득하고 미국 역시 9ㆍ19 합의정신에 따라 북한에 대한 지나친 압박을 자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어렵게 마련한 9ㆍ19 공동성명에 따라 우선 북핵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을 모으고 그 이후에 인권과 불법거래 등 북ㆍ미 양자의 쟁점이 논의됨으로써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분리되도록 하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에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산학교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