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城麟 < 한양대 교수·경제학 > 올해의 경제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더 이상 망가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작년 말 정부가 당초 전망했던 경제성장률 5%는 일찌감치 물건너갔지만 한국은행 등이 전망한 4%도 하마터면 달성하지 못할 뻔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은 3.9% 정도 달성될 것 같고 실업률은 연초 전망했던 3.6%보다 다소 높은 3.8%로 예상되지만 소비자물가는 당초 전망치 3.0%보다 낮은 2.7%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더 잘못될 수도 있었다. 연초에 참여정부가 오래간만에 정신차리고 '경제활성화와 선진경제 기반 구축'이란 국정운영 목표를 내세우고 출발할 때만 해도 나라의 분위기가 괜찮았다. 더욱이 예산조기집행과 주식시장활성화 대책으로 인해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제가 모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곧 대내외적인 악재에 봉착했다. 대외적으로는 유가 폭등,미국 금리인상과 세계경제의 둔화,달러환율 하락 등이 발생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외국계 펀드 일제 세무조사,한ㆍ미동맹 훼손과 북핵위기,고강도 부동산대책,러시아 유전게이트와 행담도게이트에서의 대통령 측근 비리,국무총리를 포함한 참여정부 고위인사들의 오만한 언행, 4ㆍ30 재보선 참패와 연이은 국정운영시스템의 붕괴 등으로 정부신뢰가 추락하면서 순식간에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버렸다.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인 3.4%에 훨씬 못미친 3.0%로 떨어졌다. 이 때만 해도 올해의 경제전망은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서면서 달러환율 상승,유가폭등세 진정과 더불어 세계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수출이 당초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증가세를 보이며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적립식 펀드와 변액보험 상품으로 인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이 기록경신을 거듭하면서 소비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1년 전체를 보면 수출증가세와 민간소비 회복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제를 구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연초 7.3% 전망치보다 훨씬 높은 10.1%의 증가가 예상되는 수출의 역할이 단연 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에서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8ㆍ31 초고강도 부동산대책,연정 논란,X-파일과 금산법 논란,비정규직법안과 사학법 논란 등을 통해 정부가 기업 발목잡기와 정치중심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꿋꿋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올해의 경제성적표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국내총생산(GDP) 3.9%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생활수준,특히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의 증가율은 거의 0에 가깝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고 청년 실업률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5%로 전망된다면서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든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올해의 저조한 경제성장률에 대한 반등효과일 뿐이며 경제회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미약하다. 뿐만 아니라 고유가,반도체 가격 하락,조류독감,증시 급락,중소기업 자금난,노사관계 불안과 같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숨어있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는 극심한 정쟁과 경제의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기에 이제 임기 2년밖에 남지 않은 참여정부는 더 이상 최근의 사학법과 같은 국론분열적 개혁에 집착하지 말고 경제살리기와 국가경쟁력 제고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