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닫힌 공간이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관심을 넓힐래야 한계가 있다. 좁은 것을 계속하니 깊어진다. 일본에 별 특이한 '전문가'들이 많은 것은 섬이라는 공간적 한계 속에서 길을 찾은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섬나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관대함이란 덕목은 찾을 구석이 없다. 편가르기가 횡행하고 '투쟁'도 한번 하면 회복할 수 없는 극한 투쟁이다. 거기다 모두 '전문가'들이다. 얼치기와 진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치적 식견에 이르면 정치에 관심없는 것조차 죄악시될 정도로 선택을 강요하는 논리도 세다. 이런 편가르기 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옳은 일인지는 전문가도 모르고,일반인도 모르고,학생들도 알 도리가 없다. 몸도 생각도 모두 닫힌 공간에 갖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문제가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의 돌파구는 어쩌면 간단한 것 아닌가 싶다. 이 좁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하는 시각을 가지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실제 지구상의 정상적인 나라들이 잡고 있는 방향은 모두 글로벌이다. 자국의 수요만으로,자국의 자원만으로 불가능한 것을 잘 알기에 나라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부자 환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나라 차원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싱가포르와 태국을 보라. 우리도 말로는 90년대 초부터 세계화를 부르짖어 왔다. 그러나 관광객으로서,배낭여행족으로서 국민들의 경험이 조금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달라진 게 없다. 실제 숫자가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화에 대한 태도는 7.04점(10점만점)으로 조사대상 51개국 중 31위에 그쳤다. 외국문화 수용 정도는 6.79점으로 42위에 불과했다. 전국 각 지역마다 혁신도시,혁신클러스터,혁신발전계획들이 넘치지만 묘하게도 세계를 상대로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나마 글로벌화에 적극적인 기업들의 경우도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연구개발(R&D) 글로벌화 수준은 2%에 불과해 북미(24%)나 일본(15%)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스스로 쌓아놓은 벽 속에 갇힌 형국이다 보니 세계를 향해 꿈을 키워야 할 젊은이들조차 글로벌한 비전을 갖는 경우가 드물다. 당당히 외국에서 다국적 기업의 전문가 자리를 차지한 동년배들의 얘기를 듣고도 '내 주제에 무슨…'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이가 더 많다. 눈만 한번 돌리면 무한한 잠재력의 시장이 있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당장 아시아만 해도 그렇다. 2003년 현재 아시아의 실질 GDP는 35조달러로 세계의 27%를 차지하고 있고 이 비중이 2010년에는 32%(44조달러)로 높아질 것이다. 이런 시장 속에서 우리끼리 담을 쌓고 언제까지 깊고 깊은 전문가의 향연을 벌일지 답답하기만 하다. 반도는 섬과 대륙의 장점만 고루 갖고 있다. 대륙과 바다,양쪽으로 뻗어갈 수 있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데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생각마저 갇혀있는 것 뿐이다. 밖을 보는 순간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년 경영계획에 이 한마디는 절대 빠뜨리지 말자. 비전,글로벌!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