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운 < 농업기반공사 사장 ajw@karico.co.kr > 서울 밝은 달 아래/밤 늦도록 노닐다가/들어 와 자리 보니/가랑이가 넷이어라…(중략). 신라의 향가 '처용가' 중 일부다. 솔직하고 대담한 표현과 당시의 작품과 다른 형식 등으로 유명한 처용가는 특히 주인공 처용의 특이한 외형과 행적으로 인해 많은 학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처용의 존재와 관련해 그가 서역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이 최근 몇몇 학자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당시 신라에는 고려의 벽란도와 같은 국제 무역항이 울산에 있었는데 이 울산항에는 당과 발해,왜뿐만 아니라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교역했다는 사실에서 서역인의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특히 당시의 신라 무역항에는 많은 외국인이 거주했다는 게 외국 자료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사실 처용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문제는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 외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미 100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유입되고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기고,또 단일 민족이 강조된 것은 국가의 독립을 지키고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민족이라는 개념이 우리의식에 고정관념으로 뿌리 깊게 자리잡으면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민족의 용광로라는 미국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울려 발전을 구가하는 개방사회를 만드는 것이 21세기 글로벌 시대,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배척돼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우리 농촌에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많은 외국인 신부가 유입되고 있다. 한 여성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농촌 총각의 4분의 1이 외국인 신부를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 농촌에서 이들의 2세를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문제는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과 외국문화,특히 피부색이 다른 민족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한 우리나라에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외국인 신부는 작게는 농촌 총각들의 천생 배필이지만 앞으로 10년,20년 후에는 우리 농촌 구석구석에서 더불어 살아갈 한국인의 어머니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우리 농촌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농촌의 새로운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는 단초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