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심사반'과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 2층 브리핑룸에서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한 뒤 관련사항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심사반은 이 혁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을 반장으로 정부쪽에서는 외교부의 이원영, 이의민 본부대사와 조성용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부장이, 민간에서는 전현수 경북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원 등 7명으로 구성됐다. 다음은 외교부 당국자를 비롯한 민간위원 3명 등의 모두발언 및 일문일답이다. ◇ 모두발언 (외교부 당국자) 외교부는 민관공동 문서공개심사반을 구성해 문서별로 다양한 토의와 총리실 문서공개대책회희 협의 등을 거쳐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분량은 156권에 3만5천354쪽이다. 당시 한일 정부의 최대 외교과제 중 하나였던 국교정상회 교섭과정은 보도와 저술 등을 통해 상당부분 알려져 있지만 이번 공개를 통해 정확한 실상을 국민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역사가 평가를 내리겠지만 당시 교섭 당사자들이 주어진 여건에서 국익을 위해 어떻게 교섭했는 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서공개가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한일수교 교섭과정 공개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이를 기초로 정부와 국민이 한일관계의 과거.현재.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일문일답 --대일 배상금을 정하는 과정에서 한일 정치권 사이에서 거래가 있었나. 김종필 전 총리가 6천억원 가까운 리베이트를 받아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체 없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학계 등에서는 부실협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심사단의 평가와 결론은. ▲심사단이 평가를 내릴 입장은 아니지만, 대체로 당시 주어진 상황에서는 치열하게 일본과 교섭에 임해 국익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느끼고 있다. --문화재 반환교섭과 관련, 우리의 3천점 반환요구에 일본은 반환의무가 없지만 증여를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반환결과는 3천점에 못미치는데. ▲문화재 교섭에서는 우리 정부의 인식은 35년간의 지배가 불법에 근거한 것으로 문화재가 약탈됐기 때문에 반환의무가 있다는 입장이고, 일본은 합법이라는 입장에서 선의에 의해 증여할 수는 있어도 반환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이 196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반환도 아니고 증여도 아닌 인도로 결정됐다. 인도해야 될 품목은 국유에 한했다. 민간 소장품은 정부 차원에서 회수해 돌려주는 게 불가능해 국유로 되어 있는 문화재만 성의를 갖고 인도한다고 돼 있다. 그래서 상당히 적은 수만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국유나 민간소유냐에 대한 사실관계의 파악도 어려웠다. 예를 들어 국립대학 소장 문화재가 국유냐 사유냐 문제부터 문화재 리스트가 일본내 어디에 소장돼 있고 어떤 경로를 통해 누가 갖고 있는 지 모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주장하고도 못받은 것에 대해서는 현재 반환주장의 근거가 없나. ▲1966년 6월18일까지의 반환 품목이 명시돼 있고 그 외 품목은 만일 새로운 것이 발견돼 반환해야 하면 정부간 재협의해 합의를 이뤄 반환받아야 한다. --간도관련 문서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전인 1950년 10월에 대일강화조약에 대한 기본태도와 그 법적 근거에 대한 주일대표부 안으로 만든 자료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우리가 전승국의 지위를 확보할 경우 일측에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주장에 관한 예비입장을 기술하는 내용 중 하나다. 그런데 전승국 지위 확보에 실패했고, 따라서 이 문서는 어떤 교섭에도 이용된 적이 없이 단순히 주일대표부 안으로 그쳤다. --회담과정에서 일본과 독도를 논의하면서 우리 대표들이 독도가 중요한 섬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는데. ▲(민간위원 전현수 교수) 일측은 1962년 들어 청구권 문제 타결 즈음해서 독도를 한일회담의 본의제로 상정하려고 했다.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 폭파하자, 공동사용하자 등을 주장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폭파를 말할 정도로 무가치한 것인데 왜 자꾸 문제삼느냐며 회담 진행에 방해만 된다고 했다. 대응과정에서 수사적 발언이 나온 것이지 우리가 무가치한 섬으로 판단해 그런 발언이 나온 것이 아니다. 회담 기록 중에 그런 말은 의제화를 피하려는 우리 대표단의 고도의 전술적 용어법으로 판단된다. --이번 공개로 상대인 일본에 대해 난처해진 부분이 있나. ▲그런 문제에 대해 면밀히 검토.토론했다. 독도문제를 포함해 모든 사안을 공개해도 전혀 일본에게 문제제기를 당하거나 약점 잡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문서검토 과정에서 분실했거나 일부러 폐기한 것은 없었나.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민간위원) --문서공개의 의미는. ▲한일국교 정상화는 한국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학자나 정치권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에 전체를 공개함으로써 지금까지 논의됐왔던 한일회담 전체에 대한 평가를 가능케 하는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간 일부 자료들이 유출되고는 했지만 그 문서들의 경우 사실은 정부의 공식 공개가 아니었다. 이번에 정부가 합법적으로 최초로 공개한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한일회담은 굴욕회담이라는 주장들이 많았다. 검토작업을 하면서 민간 전문가이자 학자로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됐나. ▲나도 젊고, 한 때는 한일협정이 굴욕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3만6천장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우리 정부가 국익을 대변하기 위해 비교적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물론 굴욕적인 36년 식민지배를 통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손해에 상당하는 보상은 부족하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당초 8천만∼1억5천만달러만 주려했는데 우리 대표단이 최대한 액수를 끌어올렸다. 과거청산이나 국익 유지와 옹호를 위해 당시 대표단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번 공개로 이제까지 알려졌던 사실과 다른 내용은 무엇이며, 국익과 관련해 공개 논란이 있었던 부분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을 위해 자금에 쪼들려 졸속협상을 했다거나 독도와 관련해 심대한 양보를 하고 이면합의를 했다는 게 학계.언론에서 제기돼왔지만 전혀 없었다. 특히 독도와 관련해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공개문서가)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된다. ◇ 이원덕 국민대 교수(민간위원) 3만5천장의 방대한 양을 3개팀이 검토했고 필사본, 일어, 영어가 많았다. 청구권과 관련해 세간에는 보상이냐 배상이냐 청구권이냐 경협이냐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한일회담의 기본전제는 청구권에 관한 교섭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우리가 정식 서명국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때 일본으로부터 많은 배상과 보상을 받으려고 많은 준비를 해왔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서명국으로 참가해 전승국 지위를 획득하지 않을까 하는 전제에서 였다. 그러나 외교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는 한일은 미해결 상태에 있는 재산청구권 문제를 양자교섭으로 해결하라고 돼 있다. 이에 입각해 1951년부터 14년간 협상을 한 것이다. 심정적.도의적으로는 일본에 배상금.보상금을 요구하겠다고 하면서도 국제법적으로는 일본 주장대로 청구권 주장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배상은 국제법적으로 전승국이 패전국에 대해 물리적 피해를 합법적으로 구제하는 국제법적 조치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많은 배상금을 지불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마찬가지였다. 패전한 일본에 대한 배상금을 논의하게끔 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고, 최종적으로 이 조약에서 우리가 서명국이 되지 못했다. 한일회담 자체가 불만스럽다는 요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 강화조약이다. 한일회담은 그런 틀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심정논리와 민족주의적 논리를 동원해 요구해도 일본은 꿈쩍도 안했다. 청구권 교섭에 일본의 입장은 바로 이 법률과 증거에 입각한 것이었다. 우리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우리 정부가 난적(難敵)인 일본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학자의 양심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원(민간위원) --문서공개 의미는. ▲사실의 새로운 발견이라기 보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으로서 의미가 있다. --한일회담이 굴욕협상이었나. ▲국익을 바라보는 관점 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당시 박 정권이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개발 하자는 게 국익이었다면, 청구권문제를 지연하더라도 독도를 분명히 하는 게 국익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국익의 충돌이 당시 있었다. 하지만 굴욕외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잘됐느냐 올바른 선택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유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굴욕외교라든지 협정을 개정해야 된다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 이원영 본부대사(정부위원) 세 부분으로 나눠 관리와 교수가 함께 했고 정말 잘 했다. 일일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선배님들 정말 고생했습니다. 어려운 상대인 일본을 만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졌다. 공개로 인한 득실과 국민의 알권리를 생각한 결과 심사위원들은 문건 전체 공개가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 점 의혹없이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공개 여부는 법령에 따른 것인가 심사위원의 권한인가. ▲심사위원은 의견을 제시한다. --간도와 관련해 심사위원 다수가 비공개 의견이라는 얘기도 있다. ▲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해서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 심사위원간 협의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결론은 심사위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