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평화ㆍ역사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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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건 인류가 그 사실을 잊는 일이다.' '망각은 포로 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앞의 것은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뒤의 것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립묘지 옆 '야드 바셈'에 있다는 글귀다.
야드 바셈이란 히브리어로 '이름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뜻.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장소다.
추도탑과 전시관 등이 있고 어린이 희생자 애도 별관이 따로 있다.
줄을 잡고 가야 할 만큼 캄캄한 별관에선 무거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희생자의 이름이 반복해서 방송된다.
1953년부터 추진된 이곳엔 지난 3월 홀로코스트박물관이 새로 개관됐다.
아우슈비츠 해방 60년이 됐지만 그 참혹함을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들도 잊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침략과 학살의 끔찍함을 되새김으로써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각국의 시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월 프랑스 마레 지구 홀로코스트 기념관 앞엔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대형석조벽(이름의 벽)이 건립됐고,6월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옛 히틀러 총통부 자리에 관 모양의 콘크리트 2700여개를 늘어놓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완성됐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정부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터를 한국판 야드 바셈이라고 할 '평화·역사의 광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용산 기지는 청일전쟁 때부터 일본군이 병영지로 쓰기 시작,일제 강점기 내내 한국 침탈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인 만큼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탑을 세우고 박물관 사료관 평화공원 등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럽의 경우 2차 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희생자들의 아픔을 기리는 기념관과 공원을 세웠는데 우리는 이제야 겨우 옛 치욕을 돌아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과거 극복은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는 한 눈을 빼앗긴다.
하지만 과거를 잊는 자는 두 눈을 다 잃는다'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