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욱 < 사회부장 >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파업 투쟁으로 인한 '희생자'를 구제하기 위해 지난 3월 노조 규약을 고쳤다. 4년 전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된 조종사들에게 입사 동기생이 받는 연봉의 평균액을 지급하고 장학금 등 각종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상한 연령을 60세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반 승무원 기장의 정년이 56세지만 4년간 촉탁으로 재채용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었다. 조합비의 28.5%를 적립하도록 한 '해고자구제기금'에서 파업을 주도하다가 해고된 3명에게 지난해 지출된 기금은 총 4억2000만원. 이중 2명은 노조 간부로 활약하고 있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노조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이를 노조로 보지 않으며 노조는 해당 사업장 임직원만 가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이들이 사실상 60세까지 고임을 받는 '귀족 해고자'란 별칭을 갖게 된 데에는 2001년 6월12일부터 14일까지 벌인 파업으로 인사 및 경영권과 관련,묵직한 전리품을 챙긴 영향도 없지 않을 성싶다. 당시 회사는 항공대란을 일으킨 노조에 무릎을 꿇고 '외국인인력운영약속이행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내용은 "(비노조원인) 외국인 조종사 수는 2001년 말 기준으로 동결하고 매년 점진적으로 감축하되 2007년 말까지 그 수의 25∼30%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대한항공 간부들은 이를 놓고 '항복문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1년만 해도 전체 조종사의 15%에 달했던 외국인 비율은 지난 6월말 9.4%로 떨어졌다. 이처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파업을 통해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것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지난해 11월 노조를 설립한 뒤 처음 맞는 이번 단체협약 협상에서 사측에 요구한 핵심 항목 중 하나도 '외국인 조종사,계약직 조종사 등 비정규직 운항승무원을 채용하고자 할 때 조합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은 매년 100명가량 신규 조종사를 확보하고 있다. 아시아나도 올해 50명 이상 채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항공사에서 채용하려는 40세 미만의 공군 전역 예정 조종사는 연간 50∼60명에 머문다. 항공대학 비행교육원 출신자도 연간 60명가량 배출된다. 조종훈련생 1명을 훈련시키는데 약 2억원이 들어가고 훈련원 입교생이 기장이 되는 데 약 10년이 걸리는 만큼 사측도 조종사를 '여유있게' 양성할 여력은 없다. 다른 부문과는 달리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다 보니 조종사노조가 칼자루를 쥘 수밖에 없다. 추석이나 설 연휴는 꿈꿀 수 없고 늘 사고의 공포에 시달리는 조종사들이 권익 향상을 위해 정당한 투쟁은 벌일 수 있다. 다만 해고자까지 억대의 연봉을 주는 조종사들이 징계 및 승진 등과 관련,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는 공감을 얻기 힘들다. 혁신과 경쟁을 꺼린 채 안전지대에 머물고자 하는 인식의 '틀'은 '관'(棺 )이 될 수 있다. 조종사 자원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훈련생 양성을 지원하고 조종사 파업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노사 양측에서 '제2의 항복문서'란 말이 나와선 안된다. 조종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