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7년간 국내총생산(GDP) 350억 유로 증가. 건설, 관광 등 부문에서 6만개 일자리 창출." 10.2%에 이르는 고질적인 실업률과 경기 침체에 시달리며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프랑스 정부가 비장의 카드로 간직해 온 꿈들이 6일 싱가포르에서 수포로 돌아갔다. 프랑스(파리)는 이날 2012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전통적인 라이벌인 영국(런던)에 패배하면서 자존심을 상했다. 앞선 여론평가에서 줄곧 앞서다 막판 역전을 당하자 많은 파리지앵들은 일손을 놓고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인물은 자크 시라크(72) 대통령 본인이다. 부진한 정책 성과로 인해 대중의 신뢰를 잃어가는 그에게 올림픽 유치는 극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었지만 이마저 뜻대로 안됐다. 5월 29일의 유럽헌법 부결에 이은 악재의 연속이다. 10년째 대통령직에 있는 그는 실제로 최근 30% 안팎에 불과한 극히 저조한 여론 지지도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좌파 매체들은 임기 2년을 남긴 그에게 남은 권위라곤 거의 없다며 '레임 덕'에 빠졌다고 공격하고 있다. 시라크 정부는 고질적인 실업 문제 해소에 주력해 왔지만 별반 효과가 없어 보인다. 패기에 넘친 차기 대권주자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치솟는 대중 인기도도 시라크 대통령의 권위와 위상을 침해하고 있다. 나라 밖으로도 노련한 정객으로서의 그의 위상과 입지는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예산안 협상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정면 충돌했지만 EU내 세싸움에서 점점 더 블레어 총리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블레어 총리는 국내 경기의 활황에다 올림픽 유치까지 따냄으로써 승승 장구하고 있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퇴임 위기에 처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함께 갈수록 곤경에 처하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와 독일 정상들과의 회담장에서 영국의 광우병과 음식에 대해 혹평하는 농담을 던진 것으로 보도돼 국제적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6일 블레어 총리의 약진과 시라크 대통령ㆍ슈뢰더 총리의 고전을 대비시킨 기사를 보도해 주목된다. 리베라시옹은 블레어 총리가 지금까지 EU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차지해온 지위와 역할을 대체하는 강력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경제 성장과 낮은 실업률 등으로 자신들의 모델에 승부를 걸며 승리를 장담하는 반면 시라크 정부는 사회보장 중시의 전통적인 프랑스식 모델을 주장하지만 성장, 고용 창출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프랑스 외의 다른 국가들에 이 모델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리베라시옹은 많은 EU 국가들이 영국식 모델에 끌리는 상황이라면서 "프랑스는 영국의 약진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시라크 통치 말기에 이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