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송위원회가 전범수 한국방송통신대 방송정보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미디어렙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 4월 말 문화관광부가 방송광고 태스크포스(TF) 산하에 미디어렙 소위원회를 구성해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자 이룰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렙이란 광고판매대행사(Media Representative)를 일컫는 것으로 현재는 정부 산하의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지상파방송 광고 대행을 독점하고 있다. 민영 미디어렙은 1980년 이후 KOBACO의 독점상태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명분과 목표 아래 1999년부터 도입이 추진돼 왔으나 방송광고료 인상과 매체간 불균형 심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신설 움직임이 중단됐다. 문화부가 미디어렙 소위를 구성하자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는 지난주 회보를 통해 "문화부가 민영미디어렙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고 신문업계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화부 미디어렙소위는 무엇을 논의하나 문화부 미디어렙소위는 김기원 한국광고주협회 상무,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박찬표 KOBACO 연구위원, 박현수 언론영상학부 교수, 신태섭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정책위원장 등 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계 전문가들이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두 차례씩 회의를 열고 있는데 늦어도 올해 안으로 구체적인 미디어렙 설립 방안과 일정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문화부의 송수근 방송광고과장은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안 마련을 약속했고 경제장관간담회나 대외경제위원회에서도 올해 안에 방송광고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데다 WTO 서비스시장 개방 계획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주무부처 차원의 논의가 불가피하다"면서도 "현재 방송과 통신 통합규제기구 구성이 논의되고 있어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하지는 못하고 방침만 제시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논의 결과 현재의 방송광고대행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마련됐고 민영 미디어렙 도입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나 도입 숫자와 함께 KOBACO나 방송사의 지분 참여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렙 도입 논의 어떻게 진행됐나 KOBACO의 독점체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의 공약이었다. 현행 통합방송법 체제의 틀을 만든 방송개혁위원회도 2001년부터 1단계에서는 공-민영 미디어렙 구분하고 2단계에서는 구분을 폐지하는 방안을 99년 2월 내놓았으며 2000년 3월 미디어렙 추가 도입의 근거를 담은 통합방송법도 발효됐다. 방송법 73조 5항은 지상파방송사업자가 할 수 있는 광고에 KOBACO와 함께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가 위탁하는 방송광고물을 추가해 미디어렙 신설의 길을 열어놓았고 시행령에는 KOBACO가 출자한 회사로 못박았다. 이에 따라 2000년 문화관광부는 허가제를 5년간 존속하는 상태에서 민영 미디어렙 1개를 우선 도입하되 KOBACO와 함께 역무를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으로 나누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는 △허가제 존속 시한 2년으로 단축 △실질경쟁이 가능하도록 2개 이상 신설 △공-민영 영역 구분 폐지 △방송사 지분 한도 20%로 확대 등의 심사권고 결정을 내렸다가 신문사와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자 문화부에 보완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결정을 유보했다. 이후 미디어렙 신설 논의는 한동안 잠복했다가 WTO 협상에 따른 통상정책 마련과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 차원에서 다시 검토되면서 재개됐다. 특히 방송광고 주무부서인 방송위와 문화부가 잇따라 연구 의뢰와 태스크포스 구성에 나서면서 이에 따른 논란과 갈등도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렙 찬반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광고업계에서는 당연히 미디어렙의 신설을 환영하고 있다. 현행 KOBACO 독점체제가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많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독점체제 아래서는 광고기법이나 영업전략의 발전이 제한될 소지가 많고 '끼워팔기'나 '나눠주기' 관행 등도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SBS도 미디어렙 신설을 찬성해왔고 MBC도 민영 미디어렙 1개를 신설해 공-민영 역무를 구분하는 방침에 반발해왔다. 이들은 KOBACO 독점체제가 5공 언론탄압의 유산이라는 점도 들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나 신문사, 군소방송 등은 △광고단가 인상 △시청률 경쟁 가속화 △중소 광고주 지상파TV 광고 기회 박탈 △군소방송 경영 악화 △신문이나 잡지 등을 포함한 매체간 불균형 심화 등을 내세워 경쟁체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뉴미디어가 속속 등장함에 따라 지상파방송의 공영성과 시청자 권익을 지켜내려면 KOBACO의 순기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위의 의뢰를 받아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전범수 교수는 "민영 미디어렙 1개 를 허가해 공영방송 대상의 KOBACO와 함께 운영하고 2년이 지난 뒤에는 방송사별 1개의 미디어렙을 갖도록 하되 일정한 시기 이후에는 등록제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방송의 공익성을 지켜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작비 투자 규모의 균형과 효율성 확보 △공익 프로그램 제작기금 설립 △지상파방송의 공적 서비스 할당과 평가 시스템 도입 △수신료 비중 확대를 통한 KBS의 완전 공영화 등 4가지를 제시하는 한편 △한시적으로 방송광고요금 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광고요금의 급격한 상승 방지 △중소 규모 방송사 지원 △미디어와 광고주간의 공정경쟁시스템 강화 등의 보완책도 내놓았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