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새벽 3시35분(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중심가의 영국 영사관 입주 건물 앞에서 발생한 사제 수류탄 폭발사고는 목격자들이 경찰에 신고할 필요조차 없었다. 근처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이라면 모두 뚜렷이 들을 수 있을만큼 폭발음이 컸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았겠지만 9.11 테러의 악몽을 겪은 뉴요커들 가운데 이 폭발음을 들은 사람은 또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 분명하다. 한 목격자는 "폭발음이 천둥소리만큼 컸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폭발물은 장난감 속에 흑색 폭약을 채워넣어 만든 사제 수류탄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추정했다. 두개의 폭발물 가운데 한개는 파인애플, 한개는 레몬 크기로 추정됐다. 그러나 폭발은 `장난'이 아니었다. 폭발물이 설치됐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화분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조각 일부가 근처로 튀었고 이로 인해 영국 영사관 건물 입구 대형 유리창이 박살나고 근처에 주차해 있던 자동차 한대도 파손됐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에서 "근처를 지나던 행인이 있었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 후 근처를 샅샅이 뒤졌으나 폭발물 시한장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누군가가 퓨즈에 불을 붙여 폭약을 터뜨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떤 동기로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렸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시장과 레이먼드 켈리 뉴욕시 경찰청장은 사고 전 어떤 위협도 없었고 사고가 자신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도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영사관 건물' 앞에서 사고가 났다고는 하지만 영국 영사관은 14층인 이 건물의 9층과 10층을 쓰고 있을 뿐이며 다른 많은 공공 또는 민간 외국기관과 판매업소들, 사무실이 이곳에 입주해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폭발 사고가 영국과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주는 단서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 사고와 이날 실시된 영국 총선과의 연관성도 규명할 길이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배제할만한 증거도 없는 실정이다. 이 건물에 입주한 민간 경제 조사기관 콘퍼런스 보드의 게일 포슬러 전 부사장은 자신이 이사회 이사로 있는 건설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불도저가 팔레스타인 가옥 철거에 동원된 것과 관련해 지난달 한 좌파 유대인 단체의 항의시위에 직면한 적이 있다. 한때는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의 직원 한명이 사고현장 근처를 서성거리다 경찰에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았지만 이 유엔 요원은 단순하게 현장 저지선에 접근하지 말라는 경찰의 지시를 어긴 혐의로 일시 구금됐을 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현장 주변에 설치돼 있는 수많은 보안용 감시 카메라 녹화 필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3번 애비뉴와 52, 53가는 맨해튼에서도 가장 번화한 상업지역으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이 카메라들 가운데 다수는 가로등처럼 보여 범인은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얼굴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있다. 켈리 청장은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필름들을 정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용의자에 관한 뚜렷한 실마리가 발견됐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켈리 청장은 다만 필름 자료들을 볼 때 폭발물 가운데 하나는 길 건너편에서 던져졌을 가능성이 있고 폭발 당시 조깅을 하는 여성과 자전거에 탄 사람, 택시 한대 등이 근처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면서 목격자들에게 신고를 당부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